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041/42, 툴루즈 백작령 툴루즈 |
---|---|
사망 | 1105. 2. 28, 트리폴리 근처 |
국적 | 툴루즈 |
요약
툴루즈 백작(1093~1105), 프로방스 후작(1066~1105).
(영). Raymond Ⅳ. 별칭은 Raimond de Saint-Gilles.
서유럽의 여러 통치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제1차 십자군에 참여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트리폴리를 정복해 다스리는 동안(1102~05)에는 트리폴리의 레몽 1세라고도 했다.
백작 재위 초에는 교황청의 개혁운동을 지지하는 독실한 평신도 지도자였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제1차 십자군 원정을 호소(1095)하기 전에 이미 레몽에게서 참전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두었던 것 같다. 비잔틴 황제 알렉시우스 1세 콤네누스를 싫어했지만 십자군 원정중 황제의 영토에 대한 이해관계를 가장 열렬히 지지하게 되었고 때로는 자신의 불이익까지 감수했다. 다른 십자군 지도자들과는 달리 중동지역 공국을 차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의 후손들이 세운 라틴계 트리폴리 백작령의 시조로 여겨진다.
투르크에게서 안티오크를 빼앗도록 도와준 뒤(1098. 6. 3) 안티오크 시의 프랑크족 십자군 군주인 보에몽 1세를 설득해 그곳을 비잔틴 제국에 돌려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뒤 예루살렘 진군(進軍)을 계획하고 예루살렘 점령에 참가했다(1099. 7. 15).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 왕국의 왕위를 거절했으며 대신 하(下)로렌 공작인 부용의 고드프루아가 왕이 되었다.
고드프루아와 다투기도 했지만 예루살렘이 이집트 파티마 왕조의 공격을 받자 힘을 합쳐 싸워 이집트군을 물리쳤으며 1100년부터는 보에몽이 다스리던 안티오크 공국의 남진을 알렉시우스 대신 막아냈다. 트리폴리 근처에 몬스페레그리누스(몽펠르랭) 성을 짓고 그곳에서 죽었다.
존 휴 힐과 로리타 리틀턴 힐이 쓴 〈생기유의 레몽 4세 Raymond IV de Saint Gilles〉(1959)는 〈툴루즈 백작 레몽 4세 Raymond IV, Count of Toulouse〉(1962)라는 제목으로 영역되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정치가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