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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0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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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149. 6. 28 |
국적 | 안티오크 |
요약
안티오키아 공(1136~49).
(영). Raymond. 별칭은 Raimond de Poitiers.
안티오키아 공국을 손에 넣으려던 비잔티움 황제 요안니스 2세를 잘 막아냈다. 프랑스 중서부의 푸아티에 백작 기욤 7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135년 안티오키아 공국 상속녀 콩스탕스의 섭정을 하고 있던 예루살렘 라틴 왕국의 왕 풀크는 그녀에게 사절을 보내 당시 잉글랜드 왕 헨리 1세의 궁정에 있던 레몽과 결혼할 것을 제안했다. 레몽은 1136년 4월 안티오키아로 와서 9세의 콩스탕스와 결혼해 안티오키아의 통치자가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은 제1차 십자군 원정 때(1095~99) 십자군이 안티오키아를 제국에 넘겨주겠다고 한 약속을 어기고 도리어 그곳을 차지하자 그뒤 계속 안티오키아 양도를 주장했다. 1137년 8월 황제 요안니스 2세 콤네누스는 안티오키아로 가 레몽에게 알레포 주변 영토를 이슬람교도들에게서 빼앗아 그곳과 안티오키아를 교환하자고 설득했다. 1138년 4~5월에 두 사람은 이슬람교도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그뒤 요안니스는 안티오키아로 와 성채의 반환을 요구했으나 레몽이 이를 회피하자 곧 안티오키아를 떠났다.
1142년 9월 시리아에서 싸우고 있던 요안니스가 아직 정복하지도 않은 공국과 안티오키아의 교환을 다시 요구하자 레몽은 비잔티움군이 안티오키아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고, 비잔티움군은 공격 준비를 취했다. 그러나 1143년 4월 요안니스는 죽고 레몽은 이 틈을 타 북쪽의 킬리키아에 쳐들어갔지만 곧 격퇴당하고 안티오키아로 돌아와야 했다. 그뒤 비잔티움군이 안티오키아 북쪽과 공국의 해안지역을 공격했다. 게다가 이듬해 에데사가 이슬람교도들에게 넘어가 북동쪽에서도 공격을 받게 되자 레몽은 1145년 요안니스의 후계자 마누엘 1세를 달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했다.
1148년 봄 제2차 십자군 원정에 참가하고 있던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그의 아내인 아키텐의 엘레오노르가 안티오키아에 오자 루이에게 이슬람 지도자 누레딘의 북부 시리아 기지인 알레포를 공격할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루이는 예루살렘과 성묘 근처에서만 싸우려 했다. 레몽과 레몽의 조카딸 엘레오노르 사이에 추문이 일자, 화가 난 루이 7세는 1148년 프랑스로 돌아와 혼인 무효선언을 했다. 레몽은 이듬해 누레딘과 싸우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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