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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81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기계 파괴 운동
19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사회운동이다. 1811년 말경 노팅엄 근처에서 시작되어 이듬해에 요크셔, 랭커셔, 더비셔, 레스터셔 등으로 퍼졌다. 저임금에 시달리던 영국의 직물 노동자들이 공장에 불을 지르고 기계를 파괴한 사건으로 ‘기계 파괴 운동’이라고도 한다.
러다이트 운동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과도 연관이 있다. 방적 작업의 기계화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많은 숙련공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는 숙련공 대신 적은 임금을 줄 수 있는 비숙련공을 고용했으며 직물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은 계속 하락했다. 반면 식료품 등의 물가는 계속 상승하면서 많은 노동자가 빈곤과 굶주림에 시달렸다.
영국 정부가 1799년 제정한 ‘단결금지법(Combination Act)’도 노동자의 빈곤에 영향을 미쳤다. 단결금지법은 노동조합의 결성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단결금지법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단체교섭권을 가질 수 없었으며 임금협상을 위한 파업 등을 진행하지 못했다. 결국, 저임금과 빈곤에 시달리던 직물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기 시작하면서 러다이트 운동이 시작되었다.
러다이트(Luddite)라는 이름은 전설적 인물인 ‘네드 러드(Ned Ludd)’에서 유래했다. 그는 소년 시절인 1770년 후반 2대의 방적기를 파괴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실존인물인지 가공인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기계를 파괴하던 노동자들은 그의 이름을 자주 언급했으며 로빈 후드에 비유하는 등 영웅으로 여겼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러드(Ludd)’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지도자는 ‘러드 왕’, ‘러드 장군’이라 불렸다. ‘러다이트’ 즉 ‘러드들’은 보통 밤에 가면을 쓰고 움직였으며 공장을 습격하고 불을 질렀다.
이들은 사람에게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으므로 종종 지원을 받기도 했다. 다만 공장을 운영하는 고용주들과는 적대적 관계가 형성되었다. 1812년 러다이트에게 위협을 받았던 호스폴이라는 고용주는 한무리의 러다이트를 사살했으며, 나중에 이에 대한 앙갚음으로 살해당했다.
리버풀 백작 2세 로버트 뱅크스 젱킨슨 내각은 러다이트를 혹독하게 진압했으며 1813년 요크에서 열린 집단재판에서는 많은 사람이 교수형을 받거나 유배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에 따른 불황 때문에 1816년에도 비슷한 폭동이 일어났으나 강경 진압과 경기회복으로 곧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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