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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35. 3. 31, 미국 뉴욕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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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10. 11. 14,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 최초의 탁월한 벽화가.
19세기 중엽 당시 가장 진보적이었던 프랑스 풍경화법의 양식적 요소들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미술가들에 속한다. 스테인드 글라스의 제작자이자 미술과 여행에 대한 글을 남긴 작가로도 유명하다.
래 파지는 세밀화가였던 외조부로부터 처음 미술을 배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법학 공부를 하다가 1856년 미술 공부를 위해 유럽으로 갔다. 몇 주 동안 화가 토마스 쿠튀르에게서 배운 것을 제외하면 2년 동안 대부분 미술관에서 생활하며 혼자 작업을 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래 파지는 로드아일랜드의 뉴포트로 갔고 그곳에서 미술가 윌리엄 모리스 헌트의 영향을 받았다.
1866년 심한 병을 앓고 난 뒤부터는 완전한 건강을 되찾지 못했지만, 그의 탐구정신은 대단하여 종종 그와 함께 여행하곤 했던 역사가 헨리 아담스는 그를 미국에서 가장 복잡한 정신의 소유자들 가운데 하나로 꼽을 정도였다. 래 파지는 이같은 탐구 정신으로 새로운 분야를 시도한다.
1870년대에 그는 벽화제작에 착수했다. 그가 그린 가장 훌륭한 벽화는 뉴욕 시 어센션 교회에 있는 〈예수 승천 Ascension〉(1887)이다. 그무렵 그는 스테인드 글라스에도 흥미를 갖게 되었다. 〈빨강과 흰색의 작약 Red and White Peonies〉(1866, 보스턴 미술관 소장) 같은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볼 수 있듯이 스스로 고안해낸 젖빛 유리와 상상력이 풍부한 도안을 통해 스테인드 글라스를 부활시켰으며 그로 인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교회와 주택들을 위해 그가 만든 스테인드 글라스는 수천 점에 이른다.
말년에 여러 차례 외국 여행을 한 뒤 자신의 여행담을 몇 권의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1890년대에 일본과 남태평양을 여행하면서 수채화로 그린 풍경화들이 유명하다. 그가 쓴 책으로는 2권의 강연집인 〈그림에 대한 고찰 Considerations on Painting〉(1895)·〈예술 속에서의 보다 나은 삶 The Higher Life in Art〉(1908)이 있으며, 비평집과 〈걸작 회화 100선 One hundred Masterpieces of Painting〉(1912), 그리고 2권의 훌륭한 여행기 〈일본에서 보낸 어느 화가의 편지 An Artist's Letters from Japan〉(1897)·〈남태평양의 회상 Reminiscences of the South Seas〉(1912)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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