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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4세

다른 표기 언어 Ramses IV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BC 1150
국적 이집트

요약 이집트의 왕(BC 1156~1150 재위).

람세스 4세(Ramses IV)

ⓒ Refrain/wikipedia | CC BY-SA 2.0

국내외 상황이 어렵던 시기에 거대한 건축 공사를 벌이는 등 이집트의 영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람세스 4세는 왕위에 오르자 그의 아버지가 신에게 바친 선물, 아들에 대한 축복, 아버지의 통치에 대한 연구 등을 적은 긴 기록인 해리스 파피루스(Harris Papyrus)를 펴냈다.

왕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그의 유별난 노력과 신들에 대한 지나친 집착 등으로 미루어볼 때 람세스 4세의 왕위 계승은 비정상적이었던 것 같다. 그는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일반 사면을 내렸고 방대한 건축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재위 1년에는 상(上)이집트 고프토스 동쪽 와디함마메트에 있는 거대한 경사암 채석장을 조사한 뒤 건축용 석재를 다시 캐내기 시작했다. 다음해에는 채석 작업을 더욱 진척시켜 여기에 종사하는 인부의 숫자를 2배로 늘리고 왕실 묘지에 쓰일 돌을 다듬게 했다.

재위 3년에는 가장 큰 공사가 벌어졌다. 이때에는 세 무리의 인부가 와디함마메트에서 돌을 캤는데 이 가운데 하나는 5,000여 명의 군인을 포함한 8,368명의 인부들로 이루어졌으며 아몬 신의 최고 사제 람세스나크트의 지휘를 받았다. 람세스 4세는 테베 서부의 다이르알바리에 2개의 커다란 신전을 짓기 시작했으며 아몬 신의 신전 단지인 카르나크에 자신의 아버지가 지어놓은 작은 신전들을 장식하는 일도 계속했다. 또한 아버지가 테베 서부에 지어놓은 커다란 건축물 근처에 자신의 조그마한 장제전을 지었고 이집트 곳곳에 명문을 남겼다.

그는 이러한 사업을 벌임으로써 선왕인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보다도 더 오래 통치하게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뒤에 쓰인 법률 관련 파피루스를 보면 람세스 4세 통치기간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아스완 근처에 있던 엘레판티니에서는 공무원들이 많은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10년간이나 처벌받지 않았고, 아몬 신의 최고 사제인 람세스나크트는 여러 중요 성직에 자신의 인척들을 앉힌 채 유례없는 권한을 휘둘렀으며, 팔레스타인에서는 시리아 구리광산만이 이집트의 소유로 남게 되었다.

람세스 4세는 즉위할 무렵 이미 중년의 나이였으므로 벌여놓은 사업들을 대부분 끝내지 못한 채 즉위 6년 만에 죽었고 그의 아들로 생각되는 람세스 5세가 왕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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