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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라트비아 언어로 씌어진 일체의 문학작품.
13세기에 라트비아가 정치적 독립을 잃음에 따라 라트비아 문학은 민속 시가(詩歌)에서부터 발달해나가는 순탄한 과정을 밟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라트비아 문학은 그 맥을 다시 이어나가려고 여러 방면으로 애쓰고 있다. 라트비아 문학이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뒤늦은 일로, 독일 성직자들의 힘에 의해서였다. 세속적인 라트비아 문학은 18세기 G. F. 스텐데르로부터 시작되었다. 계몽주의자였던 그는 교훈적 설화나 시골 생활의 전원풍경을 그린 작품을 썼고, 민요 가사를 자신이 쓴 가사로 바꾸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방대한 양의 민요(약 40만 곡은 출판되었고 100만여 곡은 기록되었지만 출판되지는 않았음)가 모든 시대의 라트비아 문학에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나름대로 증명했다.
일찍이 17세기에 새로운 운율법과 압운(押韻)을 도입한 감성 시인 C. 푸에레체루스는 때때로 라트비아 민요에서 따온 문체를 썼으며 라트비아 산문을 창시한 G. 만첼리우스도 반감보다는 애정을 가지고 민담을 대해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다.
라트비아 사람들은 19세기 중엽의 '민족 각성기'에 문학적으로 독립을 이루어냈다.
유리스 알루난스의 시집 〈작은 노래들 Dziesmin,as〉(1856)은 라트비아 근대 서정시의 기초를 마련했다. 민속시는 아우세클리스(M. 크로그젬스)의 여러 서정시와 안드레이스 품푸르스의 서사시 〈곰을 죽인 사람 Lāčplēsis〉(1888)에 보이는 바와 같이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라트비아 최초의 주요소설로 레이니스와 마티스 카우지테스 공동작품인 〈토지 측량사의 시대 Mērnieku laiki〉(1879)에는 농민의 생활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근대 희곡과 단편은 루돌프스 블라우마니스부터 시작되었다. 1890년대는 사실주의 운동인 '새 운동'이 일어났으나 이 시대의 주요시인 야니스 라이니스(본명은 야니스 플리에크샨스)는 그 시대의 문제들을 묘사하는 데 민속시의 이미지를 사용한 상징주의 수법을 썼다. 그의 부인 아스파지야(본명은 엘자 플리엑샤나, 결혼 전 성은 로젠베르가)는 여권신장을 위한 싸움을 내용으로 작품을 썼으나 후기에는 오히려 낭만주의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야니스 포룩스가 신(新)낭만주의를 소개했으며, 그뒤 10년 동안 퇴폐주의자나 상징주의자들이 예술을 위한 예술을 제시했다.
1905년 혁명으로 라트비아 사람들은 커다란 감정 변화를 겪고 제정 러시아와 현지 독일인들의 감독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이때부터는 서정시풍이 유행했다. 위대한 시인 카를리스 스칼베는 시와 동화에서 민속시의 윤리적 세계를 새로이 탄생시켰다.
1918년 라트비아 독립과 함께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이 등장했다. 야니스 아쿠라테르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미학적 이상을 지닌 자화상이나 낭만적 영웅들을 묘사했고 호소력이 강한 즉흥 서정시를 썼다. 프랑스와 러시아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은 A. 우피티스는 노동계급 영웅들을 이상화했다. 에드바르츠 비르자(본명은 에드바르츠 리에크니스)는 엄격한 고전 형식의 서정시를 창조했으며 산문시 〈스트라우메니 Straumēni〉(1933)에서 가부장제적 농장을 찬미했다.
야니스 야운스드라비니슈는 서정적 주정주의(主情主義)를 정착시켰고 최고의 3부작 소설 〈아이야Aija〉·〈아트발스 Atbalss〉·〈지에마 Ziema〉를 썼다. 제1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K. 슈트랄시의 〈카리슈 Kar,š〉(1922~27), 안나 브리카데레의 〈Kvēlošā lokā〉(1922), 알렉산드르스 그린시의 〈Dvēsel,u putenis〉(1932~34)와 같은 작품들이 나왔다.
야니스 에제리니슈와 카를리스 자리니슈 같은 작가들은 짜임새있는 구성의 단편소설로 전후(戰後)의 분위기를 표현했다. 야니스 베셀리스는 시대 정신과 라트비아의 민속시 정신을 조화시키려 했으며 이 노력은 지나이다 라즈다와 안드레이스 에글리티스, 베로니카 스트렐레르테 같은 작가들의 시에서 훌륭하게 열매 맺었다.
라트비아인들은 20세기의 세계를 바라보는 통일된 견해를 가지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심리적 세부묘사로 관심을 돌렸다.
미르자 벤드루페의 단편소설들은 프로이트의 영향을 보여주며, 에릭스 아담손스는 현대인의 신경질환을 묘사했다. 안슐라브스 에글리티스는 한 시기의 특정한 한 인간의 특성을 풍자하고 격화하는 것을 즐겼다. 라트비아 최고의 근대 극작가 마르티니 슈 지베르츠는 자신의 역사 비극 〈바라 Vara〉(1944)에서처럼 훌륭한 독백으로 절정을 이루는 1막짜리 긴 희곡을 발달시켰다.
여전히 많은 시인이 민요에서 영향을 받거나 영감을 얻었지만 알렉산드르스 착스(본명은 알렉산드르스 차다라이니스)는 교외 분위기를 과장된 이미지의 자유시행으로 묘사하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주요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라트비아 병사의 모습을 그린 연작 발라드 〈영원의 표시 Mūžῑbas skārtῑe〉(1938)이다. 그의 영향은 제2차 세계대전 뒤 서유럽으로 이주한 새로운 세대의 시인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벨타 스니티레의 시는 고대 라트비아의 마술 처방을 생각나게 하는 초현실주의 시의 요소를 담고 있다.
리나르드스 타운스와 구나르스 살리니슈의 시들은 착스 시의 이미지즘과 미국 대도시 생활의 경험이 융합된 것이다. 착스의 시는 라트비아 현대 시인들의 작품에서 그 반향(反響)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전위적인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3명의 재능있는 시인 비즈마 벨셰비차, 오야르스 바치에티스, 이만츠 지에도니스는 외부의 압력으로 가두어 둬야만 했던 내부의 경험세계에 개인적인 독특한 표현을 부여했다.
서유럽에서 활동한 아스트리데 이바스카, 아이나 크라우이에테, 바이바 비촐레도 시의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산문에서는 유명한 작가 알베르츠 벨스가 복잡한 현실을 묘사했으며, 서유럽에서는 일제 슈킵스나가 실존주의에서 심오한 상징주의로 전환해 소설 〈Neapsolῑtās zemes〉(1971)와 같이 서로 다른 수준이 복합된 작품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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