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808. 7. 6, 포메라니아 트레프토프 |
---|---|
사망 | 1884. 6. 19, 베를린 |
국적 | 프로이센 |
요약 프로이센의 역사가·정치가.
프로이센이 독일을 이끌 사명을 띠고 있다는 신념으로 독일 통일에 영향을 주었고, 생전에 독일 통일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프로이센에 대한 열렬한 애국심을 지녔음에도 한편으로 자유주의적·개인주의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848년 혁명 뒤에는 인기가 떨어졌다.
나폴레옹 통치에 저항한 해방전쟁을 겪은 소년시절부터 프로이센에 대한 애국심을 키웠다. 베를린에서 고전철학 교수로 일하는 동안(1835~40)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관한 글을 썼으며, BC 4~1세기에 지중해 동부와 중동에 퍼진 그리스 문화를 일컫는 '헬레니즘'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1848년 혁명이 일어난 뒤 프랑크푸르트 의회 의원에 뽑혔고, 의회 내 헌법위원회의 의장이 되었다. 그러나 1849년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독일 황제직을 거부하자 실망한 나머지 정계에서 은퇴했다.
킬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면서(1840~51), 1850년 카를 잠버와 함께 1806년부터 덴마크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국들 사이의 관계를 다룬 역사책을 썼는데, 이 책은 당시 덴마크와 팽팽한 분쟁을 벌이고 있던 독일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홀슈타인과 슐레스비히 두 공국의 권리를 너무 내세웠던 관계로, 홀슈타인 공국이 덴마크로 넘어간 뒤인 1851년에는 숙고 끝에 킬을 떠나 예나로 가서 교수생활을 했다. 그곳에서 해방전쟁 때 싸운 프로이센 장군 요레크폰 바르텐부르크 백작의 전기를 썼다(1851~52). 여생을 대작 〈프로이센 정치사 Geschichte der preussischen Politik〉(14권, 1855~86)를 쓰면서 보냈으나, 미처 마무리짓지 못하고 죽어 1756년까지의 역사만 집필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정치가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