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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의 본사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절로 금산사 , 법주사 와 함께 법상종 3대 사찰의 하나이다. 고려 문종 때에는 이 절에서 원천 법천사의 지선국사가 배출되었고 그 문하에서 속리산 승통 석규를 비롯하여 1,000여 명의 승려들이 나왔다.
임진왜란으로 동화사 전체가 불타버린 후 여러 차례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경내에는 조선 영조 때 중건된 대웅전과 극락전을 비롯하여 20여 채의 건물이 남아 있다.
이밖에도 보물로 지정된 당간지주(보물 제254호)·금당암3층석탑(보물 제248호)·비로암3층석탑(보물 제247호)·비로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동화사입구마애불좌상(보물 제243호)·석조부도군 등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의 본사이다.
신라와 고려시대를 통해 대가람이었으며 금산사, 법주사와 함께 법상종 3대 사찰의 하나이다. 〈동화사사적기〉에 따르면 493년(신라 소지왕 15)에 극달화상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부르다가, 832년(흥덕왕 7)에 심지왕사가 중창했는데 사찰 주변에 오동나무꽃이 상서롭게 피어 있어 동화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 권4 심지계조조(心地繼祖條)에는 신라 헌덕왕의 아들이었던 심지가 갖은 고행 끝에 속리산의 영심대사(永深大師)가 진표율사로부터 받은 불골간자(佛骨簡子)를 전수받아 팔공산으로 돌아온 후 불골간자를 모실 절터를 찾기 위하여 간자를 던져 떨어진 곳에다 절을 짓고 동화사라 했다는 기록이 있어 심지를 그 개조로 보기도 한다.
고려 문종 때에는 이 절에서 원천 법천사의 지선국사(智先國師)가 배출되었고 그 문하에서 속리산 승통 석규(釋窺)와 금산사 주지 혜덕왕사 소현(韶顯)을 비롯하여 1,000여 명의 승려들이 나왔다. 임진왜란으로 동화사 전체가 불타버렸으며, 1608년(광해군 1) 절을 중건할 때 화주(化主) 학인(學仁)이 미륵전을 재건했고, 1725년(영조 1)에 다시 중창했다.
그후에도 여러 차례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경내에는 조선 영조 때 중건된 대웅전과 극락전을 비롯하여 20여 채의 건물이 남아 있다. 이밖에도 보물로 지정된 당간지주(보물 제254호)·금당암3층석탑(보물 제248호)·비로암3층석탑(보물 제247호)·비로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동화사입구마애불좌상(보물 제243호)·석조부도군 등이 있다.
동화사금당암삼층석탑
보물 제248호. 높이 동탑 562cm, 서탑 524cm. 동탑의 기단은 대부분 근래에 보수되어 약간 변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하층기단의 중석에 새긴 우주와 탱주는 대나무 모양으로 조각했으며 갑석 윗면에는 정(井)자형의 굄이 있고 네 귀퉁이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상층기단의 중석에는 각 면에 우주와 탱주를 2개씩 새겼다. 탑신부의 옥개와 옥신은 각기 다른 돌로 구성되었으며 각 층의 옥신에는 우주만 장식했고, 옥개에는 위아래로 2단의 굄과 4단의 받침을 두었다. 상륜부는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며 현재 노반·복발·앙련·보륜·보주 등이 남아 있다. 서탑도 역시 2층 기단으로 지대석 위에 있는 중석은 4매의 돌로 이루어져 있고 각 면에는 1개의 탱주와 우주를 조각했다. 상륜부에는 노반과 찰주만 남아 있다.
동탑과는 세부형식에서 다소 차이점을 보이고 있으나 대체로 양식적 특징은 같이 하고 있다. 1957년 서탑을 해체했을 때 안에서 99개의 소탑(小塔)과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이 두 탑은 배치에서 통일신라시대 쌍탑의 일반적인 형식과는 차이를 보이며 결구방식이나 크기, 세부처리 등에서 9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동화사비로암삼층석탑
보물 제247호. 높이 371cm. 1층 옥신에서 나온 납석제 사리호의 표면에 "敏哀大王追崇福業造石塔記…… 時咸通四年 歲在癸未無射之 月十日記" 등의 명문이 있어 863년(경문왕 3)에 신라 민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건립된 석탑임을 알 수 있다.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이 올려진 일반적인 석탑형식을 보여준다. 하층기단은 4매의 돌로 구성되었고 각 면에는 탱주와 우주를 표현했는데 특히 갑석 위에 굄을 만들고, 아래는 잘록하게 안으로 파여져 있어 마치 다른 돌을 끼운 듯한 형태는 신라 말기에 나타나는 석탑양식이다. 상층기단도 마찬가지로 4매의 돌에 탱주와 우주가 각각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탑신부의 옥개와 옥신은 다른 돌로 만들었으며 옥신에는 우주만 간략하게 표현했고 옥개석 받침은 4단으로 되어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복발·보주만 남아 있다.
동화사비로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244호. 전체높이 293cm. 상높이 129cm. 이 불상은 비로암 법당 앞에 있는 3층석탑의 1층 탑신석에서 출토된 사리호의 명문에 의해서 863년에 석탑과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통일신라 불상조각 양식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편년자료가 되는 작품이다.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춘 완전한 석불상으로 현재 얼굴을 비롯하여 불신과 광배, 대좌의 윗부분에 호분을 두텁게 바르고 그 위에 다시 채색을 가하여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나발의 머리 위에 얹은 육계는 나지막하여 뚜렷하지 않으며 머리의 중앙과 정상부분에는 각각 계주가 있는데 후대에 만들어 넣은 것이다. 비교적 둥글고 통통한 얼굴에는 양끝으로 약간 치켜 올라간 눈매와 낮고 넓적한 코, 작은 입 등이 단정하게 표현되어 있다. 좁아진 어깨와 두 다리의 폭은 상 전체를 위축된 자세로 보이게 하며 평행으로 연속되어 내려오면서 표현된 형식적인 옷주름 등은 9세기경에 유행한 불좌상 형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특징들이다.
광배는 전신을 감싸고 있으며 2줄의 선으로 구분된 두광과 신광에는 연화무늬·보상무늬·당초무늬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또 경계선을 따라 8구의 화불이 배열되어 있다. 그 바깥쪽으로는 불꽃무늬를 새기고 가장 윗부분에는 삼존불 형태의 화불을 안치했다. 대좌는 8각형의 연화대좌로 상대와 하대에는 연화무늬가 장식되어 있고 중대에는 복잡한 구름무늬 사이로 사자를 1마리씩 배치하여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것이 특징이다.
동화사비로암석탑내발견사리함금동선각사방불
각 면 크기 세로 14.5cm, 가로 15.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4개의 금동판에는 천개 밑에 좌상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보살상이 서 있는 삼존형식의 불상이 각각 선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본존불은 각각 지권인, 항마촉지인, 합장인, 그리고 약항아리를 들고 있는 손 모양을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형식의 사방불은 아직까지 발견된 예가 없어 각 상의 도상적 명칭을 정확히 밝히기가 어렵다. 그러나 북방에 위치한 지권인의 상은 비로자나불을 나타내며 이 경우에는 일반적인 도상과는 달리 보관을 쓴 여래형으로 표현되었다.
약함을 든 상은 약사여래로 생각되나 금동판의 연결구조로는 남방보생여래로 볼 수 있고, 촉지인은 동방의 아촉여래, 합장인은 서방의 아미타여래로 각각 추정된다. 얼굴은 생동감이 사라져서 무표정한 모습이며 탄력감이 줄어든 몸체 위로는 U자형의 옷주름이 내려오면서 양 다리를 덮고 있다. 본존을 향하여 몸을 약간씩 틀고 있는 두 보살상도 거의 본존불과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리기의 선각사방불상은 함께 발견된 납석제 사리호의 명문에 따라 863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신라 사방불상 표현의 한 예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동화사수마제전금동불좌상
이 불상은 1702년에 건립된 수마제전에 안치되어 있으나 원래 있었던 장소는 알 수 없으며 현재 광배부분이 없어진 상태이다. 머리를 앞으로 약간 숙이고 있는 자세로 허리가 유달리 길게 표현되었고 상체에 비하여 무릎의 높이가 낮은 편이어서 전반적으로 불안정한 신체비례를 보여준다.
나발로 표현된 머리의 중앙에는 계주가 장식되었으며, 턱이 겹친 비만한 얼굴에는 오똑한 코와 꼭 다문 작은 입 등이 표현되어 있다. 좁은 어깨와 밋밋한 가슴에 걸쳐진 통견의 법의는 규칙적인 단을 이루면서 무릎 밑에까지 내려와 양 다리 사이로 부채꼴의 옷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왼쪽 어깨에서 1번 접혀 내려온 옷자락이 그대로 가슴의 옷깃 속으로 들어간 착의법이나 가슴 위로 보이는 내의와 띠매듭의 표현 등은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불좌상의 형식을 이어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두 손은 각각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아미타불의 중품하생인을 취하고 있다.
이 불상은 비만해진 얼굴모습이나 신체비례가 제대로 맞지 않는 점, 규칙적인 띠 모양으로 처리된 옷주름 등으로 보아 대체로 조선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동화사입구마애불좌상
보물 제243호. 높이 106cm. 얼굴은 약간 살이 찐 편으로 풍만하며 각이 진 넓은 어깨에는 통견의 법의를 걸쳤고 옷주름은 좁은 간격으로 복잡하게 늘어져 있다. 특히 가슴 위로 보이는 대각선의 내의와 띠매듭 등은 통일신라 말기 불상의 전형적인 법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두 손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며 앉아 있는 자세는 완전한 결가부좌의 모습이 아니라 오른쪽 다리를 대좌 위에 비스듬히 내려놓은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광배는 2줄의 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표현했으며 그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대좌는 앙련과 복련이 서로 맞붙어 있으며 이 연화대좌 밑으로는 구름무늬가 생동감있게 표현되어 있어 마치 불상이 천상의 정토세계에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마애불상은 전반적으로 얕은 저부조로 표현되어 부드럽고 섬세한 조각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나 얼굴의 굳어진 표정이나 비교적 경직된 어깨선, 장식적인 광배와 대좌의 표현 등은 통일신라 말기 불상에 나타나는 양식적 경향으로 대체로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초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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