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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족촌

다른 표기 언어 同族村

요약 주민의 대다수가 동일한 조상에서 파생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촌락.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는 혈연으로서 동족부락·동성부락·부계집단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일본 등지에서 볼 수 있었던 촌락의 특징적인 유형의 하나이다.

그 발생시기는 삼국시대로 볼 수 있으나 본격화된 것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부터였다. 삼국시대에서 고려초로 이어진 촌락공동체로서의 토(土)와 혈연적 씨족공동체로서의 성(姓), 즉 토성의 복합적 의미인 혈연적·지연적 집단이 동족부락의 시초였다.

고려 후기 이후에는 지방행정의 개편, 이민족 침략에 의한 토착민의 대규모 이동, 조선 왕조의 성립으로 인한 지배세력의 변동 등으로 토성의 성격은 점차 없어지고 본관이 더욱 중요시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귀족·양반·유림 등의 특수계급이 지방에서 위세를 떨치고 일반 농민을 농노화하고 많은 노비를 거느려 사실상 지방행정권을 장악함에 따라 동족촌의 세력도 확대되었다.

동족촌이 번창하게 된 요인으로는 유교사상에 근거한 조상숭배 및 혈연의식의 강화, 농업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상부상조의 필요성, 공유재산의 공동관리, 서원·향교·문묘 등 교육시설의 공동이용 등을 들 수 있다. 저명한 동족촌일수록 양반계층·지주층이 많으며 한 마을에 2개 이상의 동족촌이 양립할 경우에는 대립과 경쟁이 일어나 우세한 동성집단이 촌락 전체의 정치와 경제를 장악했다.

일반적으로 동족촌의 형태는 웅장하고 오래된 기와집의 종가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집들이 밀집되어 전형적인 괴촌을 이룬다. 지역적으로는 안동을 비롯하여 경주·상주·영천·의성·대구 달성 등 경상북도 지방에 많이 분포한다. 특히 안동 하회지방은 유성룡의 생가인 하회유씨의 본고장으로 가장 유명한 동족촌의 하나이다.

이곳에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독특한 전통과 풍속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1930년 센서스에 의하면 양반과 유림이 정착하고 있는 저명한 동족촌이 1,685개였으나 이후 점차 쇠퇴했다. 이는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신분계급의 몰락, 토지개혁에 의한 토지경제력의 약화, 도시화·산업화에 따른 농민의 이촌향도 등 사회 전반적인 변화에 따라 동족촌이 와해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극소수의 촌락만이 동족촌의 형태와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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