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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걸작 장편소설 창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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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65년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불행이 잇따른 시기였다.

아내와 형이 죽었으며, 잡지는 빚더미에 짓눌려 도산했다. 채무자 감옥에 갇힐 위기에 놓이자 그는 수상쩍은 출판업자한테 소설 고료를 선불받아 외국으로 도망쳤다. 이미 상습적인 도박꾼이 되어버린 그는 이번에도 역시 도박에 모든 희망을 걸었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몇몇 여자와 연애를 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외국에서 폴리나 수슬로바를 다시 만났는데 아마 수슬로바와 결혼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수슬로바는 비스바덴에서 그를 버리고 떠났고, 그는 룰렛에서 가진 돈을 몽땅 잃고 옷을 저당잡힐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밀린 숙박비와 모국으로 돌아갈 경비를 빌려 달라고 친구들에게 애원했다. 한 잡지 편집장한테는 〈죄와 벌〉이라는 또 다른 소설을 써줄 테니 선금을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결국 돈이 도착했고, 그는 1865년 10월에 러시아로 돌아왔다.

그가 〈죄와 벌〉(1866)을 처음 구상한 것은 아마 유형지에 갇혀 있을 때였을 것이다. 이 소설의 구상을 적어 놓은 수많은 작가 노트(그는 그후에도 소설을 쓸 때면 노트에 구상을 적어두곤 했는데, 이 작가 노트들은 그의 창작방법 및 과정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음)에는 그가 이 작품의 예술적 세부에 기울인 끝없는 관심이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부분적으로는 돈을 기본 문제로 삼고 있는 사회소설이다. 이 작품의 가난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를 비롯한 급진적 젊은이들의 유물론 사상이 이것과 관련되어 있다. 사회에 반항하는 지식인 허무주의자 라스콜리니코프는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데, 그에게는 이성이 삶의 과정을 대신한다. 인도주의적 목적은 사악한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그의 파괴주의적 이론은 결국 그를 살인으로 몰고간다.

감옥에 갇히자 그는 도덕률을 위반하도록 자신을 충동질한 지적 오만을 버리고, 행복은 이성에 바탕을 둔 실존 계획으로는 얻을 수 없으며 고통을 통해 얻어야 한다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마르멜라도프와 그의 아내, 창녀 소냐, 그리고 스비드리가일로프 같은 보조 등장인물들도 뛰어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은 살인을 다룬 흔해빠진 추리소설 속에 주목할 만한 철학적·종교적·사회적 요소들을 집어넣음으로써 평범한 추리소설적 긴장감에 새로운 차원을 더해주었으며, 발표되자마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소설의 혁신적 기법과 강렬한 문체, 그리고 범죄자와 도덕적 불구자들의 가장 어두운 내면을 밝혀주는 영적 광휘가 독자와 비평가들을 매료시켰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을 완성하기 전에 악덕 출판업자와 이미 맺은 계약을 1개월 안으로 이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계약을 어겼을 경우에는 가혹한 벌금을 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시간에 쫓긴 나머지 안나 스니트키나라는 젊은 여자 속기사를 고용하여 중편소설 1편을 기일 안에 끝냈다.

이렇게 해서 나온 〈도박사 Igrok〉(1866)는 거의 힘들이지 않고 쓴 작품이지만, 도박에 대한 열정과 폴리나 수슬로바와의 애증관계에서 영감을 얻은 힘찬 장면들이 몇 군데 들어 있다. 이듬해 그는 이 속기사와 결혼했고, 빚쟁이와 돈을 요구하는 인척들을 피해 아내와 외국으로 가 4년 동안 머물렀다. 두 사람은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다니며 살았고, 때로는 극심한 빈곤에 허덕이는 경우도 많았다. 젊은 아내는 이 모든 고난과 남편의 간질 발작, 끊임없는 노름, 그리고 첫 아이의 죽음을 꿋꿋이 견뎌냈으며 남편과 남편의 천재성에 대한 그녀의 헌신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이 2번째 결혼은 진정한 사랑에 바탕을 둔 것이었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사건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2번째 걸작 〈백치〉(1868~69)는 이처럼 불우한 상황에서 태어났다. 이 소설의 출발점은 러시아 신문에 보도된 어떤 형사재판 사건 기사였다. 이런 사건들을 그는 '환상적인 사실주의'라고 불렀지만 이것을 소설에 이용할 때는 외부세계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마음과 정신세계를 강조했다.

그는 평범한 러시아인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인간 내부의 인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런 문제들을 한 차원 끌어올려 보편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작가 노트에서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나를 심리학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단지 더 높은 의미에서 사실주의자일 뿐이다. 다시 말해 나는 인간 영혼의 모든 심연을 묘사한다." 그는 조카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백치〉의 주요의도는 "절대로 아름다운 인간(즉 도덕적인 의미에서)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절대로 아름다운 인간은 오직 한사람뿐이다. 그는 바로 그리스도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인간의 나약함은 주인공 미슈킨의 순수한 도덕적 성정을 손상시키고, 예판친 집안과 이볼긴 집안, 로고진 그리고 미슈킨의 사랑을 얻기 위해 다투는 유별난 경쟁자 아글라야 및 나스타샤와 그의 관계를 좌우한다.

이 작품에서 이들을 비롯하여 관능·탐욕·범죄에 굴복하는 여러 등장인물들이 미슈킨의 도덕적 신념을 시험하는 장면은 특히 뛰어나다. 이들은 그의 신념과 밝은 성격에 이끌리지만 봉사와 동정심 및 우애를 외치는 그의 계시는 그들을 끌어들이지 못한다. 그의 체험은 그리스도가 바리새인들 틈에서 겪었던 체험을 상징한다. 결국 그가 자신의 선량함으로 감동시킨 죄인들은 불행해지고 그 자신은 백치가 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아직 한 자도 쓰지 않은 장편소설 원고료를 선불받아 이미 다 써 버렸기 때문에 단편소설을 중편소설로 개작하여 다른 출판업자한테서 현금을 받았다.

이 중편소설이 바로 아내를 유혹한 남자에게 복수를 꿈꾸는 배신당한 남편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영원한 남편 Vechny muzh〉(1870)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창조적 예술에서는 특별히 발전한 면모를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그는 〈위대한 죄인의 생애〉라는 제목으로 5편의 장편 연작을 쓰겠다는 방대한 계획에 몰두해 있었다.

이 연작의 초안은 지금도 남아 있다. 이 소설은 신과 인간에게 몹쓸 죄를 저질렀으나 정신적 순례를 끝낸 뒤 죄를 씻고 구원을 얻는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삼을 예정이었다. 이 연작은 끝내 씌어지지 않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가 마지막으로 쓴 3편의 장편소설은 이 작품의 개요에서 사상과 장면 및 등장인물을 빌려온 것이다. 그는 이 3편 가운데 첫번째인 〈악령〉을 1869년 쓰기 시작해 1872년에 끝냈다.

〈악령〉의 주요 줄거리는 모스크바의 한 대학생이 배신자로 의심받아 동료 혁명가들의 손에 살해당했다는 선정적인 신문 기사를 계기로 구상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줄거리에 당시 구상하고 있던 〈위대한 죄인의 생애〉의 특징과 인물을 집어넣었는데, 특히 〈악령〉의 중심인물인 스타브로긴의 면모에 그런 특징이 잘 스며들어 있다. 행동과 극적인 사건으로 가득 찬 이 소설에서 그는 혁명 음모가들을 바보와 악당으로 풍자하고 있다. 그들이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는 개심한 샤토프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반혁명사상을 반영한다.

이런 반혁명적 태도는 제정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그의 민족주의적 신념을 표현하며, 이 신념은 러시아 정교회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일부로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악령〉을 지배하는 것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 스타브로긴이다. 그의 매력적인 성격은 반역적 급진주의자인 샤토프와 키릴로프뿐만 아니라 흥미있는 자유주의자 스테판 베르호벤스키 노인과 혁명가인 그의 아들 표트르에게도 영향을 주며, 주요한 여자 등장인물인 리자베타와 다리야 및 마리야는 그에게 운명적인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그가 신에 대한 믿음을 잃자 그의 본성인 타고난 선량함은 위축되어버린다. 그가 어린 소녀를 강간하는 것은 그가 악에 완전히 굴복한 것을 상징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교훈적인 의도로 이 작품을 썼지만 이 작품이 과장된 목적소설이 되지 않은 것은 오로지 그의 예술이 갖고 있는 힘 덕분이다.

그는 선정적인 요소와 이념적인 요소를 결합시키기 좋아하지만, 이 작품만큼 뛰어난 예술기법으로 이 요소들을 결합시킨 작품은 드물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악령〉을 끝내기 오래 전에 병에 걸렸고 돈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였지만, 외국에서는 소설을 끝낼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자 걱정이 된 출판업자는 그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돈을 보내주었다. 이 작품이 예상보다 더 크게 성공한 것은 인상적인 그의 작품 선집 덕분이었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다시 사교모임에 초대받기 시작했다.

1873년 그의 친구들의 도움으로 보수적 주간지 〈그라주다닌 Grazhdanin〉의 편집장이 될 수 있었다. 1년 뒤, 그는 맡은 일이 너무 제한되어 있고 발행인이 지나치게 반동적이라는 이유로 사표를 냈다. 이무렵에는 이미 유능한 아내가 그의 저작을 출판하기 시작하여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1876년에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라주다닌〉지에 기고했던 〈작가일기 Dnevnik pisatelya〉라는 칼럼을 별개의 월간지로 분리했다.

그는 이 간행물을 1년 이상이나 발간했고 1880년과 1881년에도 몇 권을 추가로 발간했다. 이 잡지는 주로 당시의 주요사건에 대한 그의 견해와 문학적 회고담 및 비평으로 채워져 있었으며 소품과 단편소설도 이따금 실었는데, 이 가운데 〈온화한 정신 Krotkaya〉(1876)·〈우스운 인간의 꿈 Son smeshnogo cheloveka〉(1877)은 그의 최고 걸작에 속한다. 그러나 그는 이 잡지를 광범위한 사회·정치·종교 문제에 대한 그의 놀라운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언론과 문학은 그의 마음속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예술과 현실의 상호관계는 일상적인 실존을 관찰한 결과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작가일기〉는 수많은 독자를 끌어모았고 그의 생활과 철학 및 소설, 특히 마지막 2편의 장편소설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작가일기〉에서 그는 〈미성년 Podrostok〉(1875)의 주제를 밝히고 있다.

〈미성년〉은 사생아로 태어난 아르카디 돌고루키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아버지 베르실로프의 사랑을 얻으려고 애쓰면서 겪은 모험을 고백한 소설이다. 베르실로프는 한 사람의 이중인격자로서 러시아인은 독특한 민족이고 완전한 세계주의자이며, 유럽 지식인들은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혁명적 유물론을 신봉하기 때문에 이제 곧 파멸할 운명에 있다는 작가의 확신을 대변해준다. 그는 베르실로프의 이중성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이 주제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처음으로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이중성을 성찰하여 이중성을 결정하는 심리적 요인들을 관찰하고, 그가 상상력으로 창조해낸 남녀의 생각과 감정 및 행동에 이 심리적 요인들을 반영했다. 그는 몇 개의 곁가지 줄거리 때문에 중심 줄거리가 묻혀 버린 것을 깨닫고 절망에 빠진 나머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성년〉 속에는 4편의 장편소설이 있소." 비평가들은 대개 이 소설을 그의 다른 작품보다 낮게 평가한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1879~80)을 집필하기 시작했을 무렵, 작가로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성은 러시아 전역에 알려져 있었다. 저명인사들이 그를 방문했고 그는 저명한 편집자이자 작가인 네크라소프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과학 아카데미는 그를 문학부 준회원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1880년에 시인 알렉산드르 푸슈킨 추모제에서 행한 연설은 러시아의 세계적 소명을 힘차고 분명하게 예언함으로써 청중들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얼마간 떨어진 작은 휴양지 스타라야루사에서 아내와 두 아이 표도르와 류보프와 함께 조용히 사는 것을 더 좋아했다. 이곳에서 그는 규칙적으로 산책하고 글을 쓰는 엄격한 요양법을 지켰으며, 헌신적인 아내는 그가 구술하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속기로 받아썼다.

그가 창작생활을 시작한 이후 줄곧 준비하다시피 한 이 작품은 한마디로 말하면 아버지 살해에 대한 이야기로 심오한 심리적·정신적 암시로 애증의 갈등을 도입하면서 아버지 살해과정을 냉혹하게 전개해간다. 소설 전체를 통해 끈질기게 이어지는 것은 믿음과 신에 대한 추구이며,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중심 사상이다.

형제들 가운데 막내인 알료샤는 그리스도교적 이상을 구현한 존재로 다루어지고 있는데, 삶의 의미보다는 오히려 삶 자체를 사랑한다. 드미트리 역시 삶을 사랑하지만 그 의미는 찾지 못한다. 삶 자체보다 삶의 의미에 더 관심이 많은 이반은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며, 창조자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신이 형상화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반의 이중성은 인간과 신의 끝없는 투쟁에 집중되어 있다. 그는 반역행위로 시작하여 신의 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반란으로 끝을 맺는다.

이반은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이 신앙을 추구하게 된 동기였던 이른바 저주받은 문제들, 죄와 고통 그리고 이것들과 신의 존재와의 관계에 관심을 갖는다. 이반이 신의 세계를 거부하는 것은 유명한 〈대심문관의 전설〉에 밀도 있게 극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은 소설의 다음 장에서 우주의 조화라는 비밀은 머리가 아닌 가슴과 감정 그리고 믿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조시마 장로의 설교 속에 제시되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알료샤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소설의 속편에서 조시마 장로의 가르침을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줄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를 끝낸 지 몇 달 뒤인 1881년 2월 9일(구력 1. 28)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 도스토예프스키는 가장 널리 읽히는 19세기 소설가로 손꼽히는데, 그 까닭은 아마 그가 소설 속에서 제1·2차 세계대전 사이의 세대 및 전후세대를 괴롭힌 도덕적·종교적·정치적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극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시인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했고, 나치 지배 이전의 한 독일 비평가는 마르틴 루터 다음으로 독일에 가장 큰 정신적 영향을 끼친 인물은 바로 도스토예프스키라고 말했다.

20세기 프랑스의 경우, 소설가 앙드레 말로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자기 세대의 지성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으며,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자신의 실존철학은 이성의 횡포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비난에서 영감을 얻었노라고 말했다.

레닌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 대해 "나는 그런 쓰레기를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소련에서도 널리 읽혔으며 유명한 소련 작가들은 그의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자신의 이상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독자들의 체험을 변형시키는 능력이 작가의 위대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20세기 미국 소설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 소설에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회의라는 질병에 허덕이며 신음하는 인물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반영웅적 주인공들로부터 창조된 형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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