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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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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왕족들과 귀족들은 대부분 돌방무덤을 썼고, 국왕의 능은 제릉서를 두어 관리했으며 말기에는 경비군인 위숙군을 배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려왕릉은 몽골 침입 등을 거치며 많은 수가 도굴되고 후대에 와서 보수를 했기 때문에 원형을 알기 어렵다.

왕릉의 대부분은 개성 주변의 산지에 있는데, 누구의 능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19기이다.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것은 헌릉·소릉 등이다. 왕릉은 능역의 좌우에 산이 둘러쳐 있고 앞으로는 내가 흐르는 곳에 자리잡았는데, 이는 당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풍수지리사상에 따른 것이다.

능역은 대개 동서 18m, 남북 36m 정도 되는 구역의 3면에 돌담을 두르고, 위에서부터 4개의 단을 만들어 최상부에는 석상과 망주석을, 제2단에는 장명등을 사이에 두고 문인석을 세웠으며, 제3단에는 무인석, 제4단에는 정자각과 능비가 있다. 봉분의 높이는 3~4m 정도, 직경 6~9m 정도로 봉토 아래에는 면석과 12지신상을, 밖으로는 돌난간과 석수를 배치했다. 특히 벽화가 확인된 공민왕의 현릉과 노국공주의 정릉은 가장 완비되고 호화로운 것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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