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460/65, 스코틀랜드 |
---|---|
사망 | 1530 이전 |
국적 | 영국, 스코틀랜드 |
요약 중세 스코틀랜드의 시인.
스코틀랜드 시의 황금기에 속하는 '스코틀랜드 초서풍 시인'(→ 마카르)의 주요 인물로, 제임스 4세의 궁정에서 활동했다.
던바나 마치 백작가문 출신으로 추측되며, 1479년 세인트앤드루스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성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련수사였고 왕의 명령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를 여행했다고 한다. 1501년에는 영국에 있었는데, 아마도 1503년에 있었던 제임스 4세와 마거릿 튜더의 결혼 준비에 관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500년에는 왕이 주는 10파운드의 연금을 받았다. 1504년 사제직에 올랐고, 1510년에는 왕의 후의의 표시로 80파운드의 연금을 받았다. 1511년 여왕의 애버딘 방문을 수행해, 그 도시에서 받은 환대에 관한 시 〈Blyth Aberdeen〉을 썼다. 1513년 플로든 전투(1513)에서 왕이 죽은 뒤로는 연금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시에서 자주 요청했던 성직록(聖職祿)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던바가 쓴 것으로 여겨지는 100편 이상의 시들은 몇편을 빼고는 대부분 짧은 시이며, 개인적인 기분이나 궁정 행사들을 주요소재로 다루었다. 이 시들은 아주 거친 풍자에서 종교적인 기쁨의 찬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긴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우아한 초서풍으로, 예를 들어 꿈의 형식을 빌린 우화 〈황금 방패 The Goldyn Targe〉는 아주 가벼운 우화적 성격을 띠는 동시에 묘사적인 이미지가 매혹적이다.
〈엉겅퀴와 장미 The Thrissill and the Rois〉는 제임스 4세와 마거릿 튜더의 결혼을 축하하는 축가이다.
이와는 상당히 다른 성격을 띤 두운시 〈던바와 케네디의 언쟁 Flyting of Dunbar and Kennedie〉에서는 경쟁자 월터 케네디를 개인적으로 비난했는데, 죽은 시인들을 회상해 쓴 〈초서풍 시인들을 위한 비가 The Lament for the Makaris〉에서는 케네디에 대해 애정어린 언급을 하기도 했다. 던바의 가장 유명하고 충격적인 풍자시는 두운시 〈기혼녀 2명과 미망인 Tretis of the tua mariit Wemen and the Wedo〉이다. 던바는 놀랄 만큼 다재다능해 찬송가·풍자시·도덕극과 외설스러운 희극, 아부하며 구걸하는 하소연, 비가와 노골적인 풍자 등을 능숙하게 다루었다.
그의 시어는 매우 다양하며, 풍자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극단적인 어휘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또 보기드문 솔직함과 기지를 가지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전통적인 주제와 형식을 다루었다. 그는 뒤에 등장하는 창의적인 전통주의자였으며 예술성과 다양성에 있어서는 스코틀랜드 최고의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작가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