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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둔사라고도 한다. 창건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신라말기로 추정된다. 대웅전은 1665년부터 1667년에 걸쳐 심수가 중창했으며, 현판은 조선 후기의 명필 이광사가 썼다. 대웅전 앞 백설당에는 김정희가 쓴 '무량수전'이란 편액이 있고, 동쪽 응진전 앞에는 대흥사응진전전3층석탑(보물 제320호)이 있다.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둔사(大芚寺)라고도 한다.
역사
창건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신라말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13명의 대종사(大宗師)와 13명의 대강사(大講師)를 배출한 명찰로 임진왜란 뒤에야 비로소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대도량으로 면모를 갖추었다. 가람배치는 절터의 북쪽에서 흘러내리는 금당천(金塘川)을 중심으로 별원의 성격을 지닌 남원과 북원으로 되어 있다. 북원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원은 천불전과 서산대사의 유물이 있는 표충사(表忠寺) 일곽, 다도로 유명한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중건한 대광명전(大光明殿) 일곽으로 나뉜다.
대웅전은 1665년(현종 6)부터 1667년에 걸쳐 심수(心粹)가 중창했는데 앞면 5칸, 옆면 3칸의 다포집으로 내부는 단조로우며 현판은 조선 후기의 명필 이광사(李匡師)가 썼다. 대웅전 앞 백설당에는 김정희가 쓴 '무량수전'이란 편액이 있으며 동쪽 응진전 앞에는 대흥사응진전전3층석탑(大興寺應眞殿前三層石塔:보물 제320호) 1기가 있다.
천불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8호)은 1811년(순조 11)에 불탄 것을 1813년 중건한 것으로, 6년에 걸쳐 경주 옥돌로 만든 천불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이 봉안되어 있고, 천불전 좌우에는 학승들이 기거하는 용화당(龍華堂: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3호)과 강사가 기거하는 건물이 있다. 1669년 건립된 표충사(전라남도 기념물 제19호)는 대흥사의 대표적 건물로 앞면 3칸의 맞배집이다. 서산대사·사명대사·처영(處英)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으며, 편액은 정조의 친필이다.
주요 문화재
표충사 삼문(三門) 밖에는 2층 누각인 의중당(義重堂)이 있는데 앞면 5칸, 옆면 3칸의 맞배집으로 봄·가을에 있던 표충사 제사 때 가지고 온 제물을 처리하던 곳이다. 의중당 동쪽에는 서산대사의 유품을 비롯하여 사중유물(寺中遺物) 총 24종을 보관하고 있는 보장각(寶藏閣)이 있다. 표충사 동쪽 300m쯤에 있는 대광명전(전남 유형문화재 제94호)은 조선 후기 초의가 건립한 앞면 3칸, 옆면 3칸의 맞배집으로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을 봉안했다.
특히 초의가 직접 단청했다고 전하는 천장의 연꽃무늬와 운학(雲鶴)문양은 뛰어난 형상미와 색채감각으로 높이 평가된다. 대광명전 옆에는 고승들의 영정이 봉안된 앞면 9칸의 보련각과 요사채가 있다. 그밖에 사천왕을 봉안한 천왕문과 역대고승들의 부도·비석을 봉안한 비전(碑殿)이 있는데, 이 비전에는 서산대사부도(전남 유형문화재 제57호)를 비롯해 대흥사 대종사 13명과 대강사 13명의 부도 및 비가 있다.
세계문화유산
2018년 6월 30일 유네스코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1천 년 넘게 우리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킨 종합승원 7곳 가운데 하나로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13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함께 등재된 다른 여섯 곳은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이다.
대흥사북미륵암마애불좌상
대흥사의 북미륵암 암벽에 조각된 고려시대 마애불좌상. 보물 제48호. 높이 420cm. 화강암의 북쪽 면에 불상을 새기고 목조전실을 건축해 조성한 마애석굴의 주존이다. 두광과 신광이 선각으로 표현된 불상은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두광과 신광 밖에 새긴 불꽃무늬[火焰紋]의 표현수법은 치졸하지만 그 안에 하강하는 4구의 비천상을 대칭으로 배치한 점은 특이하다. 얼굴은 4각형에 가깝고, 긴 귀에 양쪽 눈꼬리는 올라갔고 눈동자가 표현되어 있으며 입술은 두껍다.
통견의 법의가 두터운 편이지만 몸의 굴곡이 드러나 보이며, 왼쪽 어깨에는 가사끈이 보이고 평행선의 옷주름은 도식적으로 처리되었다. 밭은 목에 표현된 삼도도 형식적이다. 어깨가 넓고 건장하여 양감이 있는 상체에 비해 하체의 표현이 빈약하며, 수인과 발 등의 세부묘사도 부자연스럽다. 대좌에는 앙련의 연꽃무늬가 간결하게 새겨져 있다.
당시의 거불군을 대표하는 작품이며 고려시대 조각의 특징을 보여주는 불상으로 중요하게 평가된다. 상호와 각부의 조각수법을 보아 11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남 대흥사 삼층석탑
보물 제320호. 높이 430cm. 응진전 앞에 있는 탑으로 기단부는 4매의 돌로 짠 지대석 위에 하대석과 중석을 붙여서 4매의 긴 돌로 하층기단을 형성했는데, 중석의 각 면에는 2개의 탱주와 4개의 우주를 모각했다.
갑석은 1장의 돌로 경사진 윗면 중앙에 호형과 각형의 상층기단 굄을 나타냈다. 상층기단 중석도 4매로 이루어졌으며 각 면에 탱주와 우주를 1개씩 모각했다. 그 위의 갑석은 판석으로 밑에는 부연이 있고, 위에는 각형 2단의 굄이 있다. 탑신부 각 층의 옥신과 옥개는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옥신에는 각 층마다 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4단 받침의 옥개석 위에는 2단의 각형 옥신 굄이 있다. 낙수면의 경사는 보통이고 2층 옥신은 높이가 줄어든 데 비해 폭은 그다지 줄지 않았다.
상륜부는 노반·복발·앙화(仰華)·보륜 등으로 되어 있다. 복발은 일반적인 편구형(扁球形)이고 앙화는 8각형의 꽃송이를 세우고 작은 화형을 배치해 횡대를 돌린 특이한 형식이다. 기단의 탱주와 옥개석 받침의 수가 줄어드는 등 부분적으로 간략화되었으나 기단 갑석의 몰딩 수법이나 옥개석 윗면의 2단 탑신받침 등은 전형적인 신라석탑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규모가 작지만 결구(結構) 수법이 단정하고, 조각수법이 세련되고 정교해 신라 하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흥사 북미륵암석탑과 함께 신라 하대에 석탑양식이 우리나라의 서남단지방에까지 전파되었음을 알려주는 작품으로 주목된다. 1967년 1월 해체·수리 때 상층기단 내부의 자연 판석 위에서 동조여래좌상(銅造如來坐像) 1구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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