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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조선 후기의 서화가인 이우(李俁 1637~93)가 우리나라 금석문의 탁본을 연대순으로 엮은 첩(帖).
정첩(正帖) 5첩과 속첩(續帖) 2첩으로 모두 7첩으로 되어 있다. 1668년(현종 9)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朗善君) 이우가 자신이 광범위하게 수집해 놓았던 〈대동금석첩 大東金石帖〉의 일부분을 정리하여 엮었다. 이 책은 신라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로부터 조선 숙종시대에 이르는 고비·탑비·석당·석각 등 약 300여 종의 탁본을 수집하여 각 탁본의 일부분을 동일한 크기로 오려 수록한 것이다.
〈국조인물고 國朝人物考〉에 이우가 구양수(歐陽修)의 〈집고록 集古錄〉을 본떠 〈대동금석첩〉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허목의 '서문'에서 〈대동금석서〉를 '금석첩'이라 했고 또 이우가 수집한 금석탁본이 100여 첩이었다고 한 점을 볼 때 〈대동금석서〉는 〈대동금석첩〉의 '간명목록'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대동금석첩〉의 표본 및 목록으로 작성하여 첩의 맨 앞에 붙이고 또한 그 서(敍)를 첩수에 붙인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에 실린 것은 신라시대의 탁본이 19, 고려시대의 탁본이 약 90, 조선시대의 탁본이 약 191로서 각 첩의 말미에 각각의 명칭, 찬자, 서자, 건립연대, 소재지 등의 목록을 작은 글자로 기록하고 있다. 옮겨 쓸 수 없기 때문에 그 목록만이 〈해동금석총목 海東金石總目〉·〈대동금석록 大東金石錄〉·〈해동금석서 海東金石書〉 등의 이름으로 전사되어 학자들 사이에 유포되었다.
이 책에 수록된 금석문은 본보기가 되는 탁본의 일부만을 실은 것이므로 비문의 전부를 읽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중에는 현재 원석은 물론 탁본의 조각도 전하지 않는 희귀본이 들어 있고, 현존하는 것 중에 파괴된 부분의 탁본도 수록되어 있어 이 책은 서체의 연구뿐 아니라 금석문의 보완을 위해서도 필요한 자료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금석문 탁본을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목록을 작성하여 첩마다 수록한 것은 우리나라 금석학의 기초를 마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후 김정희의 〈금석과안록 金石過眼錄〉, 오경석(吳慶錫)의 〈삼한금석록 三韓金石錄〉 등도 이를 기초로 하여 금석학의 발전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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