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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09년 박은식이 유교개혁운동의 일환으로 창립한 단체.
일제의 조선 강점 직전 유림의 상황은 매우 복잡했다. 19세기 후반 이래 유교의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성향 및 사대주의와 시대의 변화에 올바로 대응하지 못하는 무능력이 신랄하게 비판받았고, 항일 무장투쟁의 의병운동 외에는 유림이 중심이 되는 적절한 조직적 운동이 전개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1907년 동도서기론을 주장하던 일단의 유학자들이 대동학회를 조직하고, 이어 1909년 공자교로 개칭하면서 친일적 활동을 하였다.
이에 박은식은 장지연(張志淵) 등과 더불어 1909년 9월 대동사상을 핵심으로 하는 대동교를 창건하여 유교개혁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1910년 8월 해산되어 많은 활동을 펼치지는 못했다. 이에 대동교의 활동은 유교계를 친일화하려던 일제의 정치공작에 대한 반항투쟁으로 평가될 뿐 그것이 겨냥했던 유교의 종교화운동이란 측면은 그다지 평가받지 못했다.
대동교의 근본사상은 박은식의 대동사상 및 〈유교구신론 儒敎求新論〉에 잘 드러나고 있다. 유교구신론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원래 공맹의 도는 민본유교적 측면을 지니고 있었으나 이것이 군주중심의 유교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이를 다시 본래의 지향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둘째,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적극적인 구세주의에 비해 유교는 동몽이 유학자를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소극적인 자세를 지녀 결국 우물 안 개구리가 되었으니 이제 다시 구세주의를 표방하고 적극적인 교화활동을 벌여야 한다. 셋째, 그동안 조선유학이 너무 주자학 일변도로 흘렀으나 이제는 민권사상과 평등사상이 내재되어 있는 양명학이 시의에 더 적합하다 등이다.
한편 박은식의 대동사상은 공자의 대동사상, 이이(李珥)의 대동론, 그리고 양명학과 캉유웨이[康有爲]의 대동사상의 영향을 받았으며, 공리공덕주의, 구세주의의 대승법, 만물일체의 인(仁), 존아국주의, 애국의 지행합일주의, 세계평화주의 등을 특징으로 한다.
대동교는 그 선명한 사상에 비해 활동기간이 짧았던 탓에 조직활동 자체로서는 큰 평가를 받을 수 없으나, 유교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새로운 조직, 즉 종교의 영역으로 탈바꿈시키려던 시도는 최근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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