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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문학은 일반적으로 한문·당시·송사·원곡으로 불려지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특히 이 시기에는 시가가 최고로 번성했다. 이전의 모든 운문형식을 쓰되 이를 다듬어 새 형식을 개발했다. 율시와 간결한 형식의 절구가 새로 도입되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오늘날 약 2,200여 명의 당대 시인이 지은 작품 5만 여 수가 전해지고 있다.
대체로 당시의 발전시기는 초당·성당·중당·만당의 4기로 구분된다.
초당(618~712) 시기에는 시의 형식미, 음률, 아름다운 표현 등을 중시했다. 왕발·양형·노조린·낙빈왕은 초당4걸로서 궁정시인과는 별도로 독자적인 작품활동을 했다.
성당(713~765)은 중국 시가 최고로 발전한 시기였다. 자연시를 쓴 왕유(王維:701~761), 맹호연(孟浩然:689~740), 전쟁이 잦은 변방의 서정을 노래한 잠참(岑參:715~770), 고적(高適:702?~765) 등이 활동했다. 이 시기에 '시선'이라 일컬어지는 이백(李白)과 '시성'으로 불리는 현실주의적 시인 두보(杜甫)가 있었다.
중당(766~835)은 안사의 난이 끝난 이후의 시기로서, 나라 전반에 걸친 혼란과 변혁으로 인해 문학작품에서도 현실주의적 경향이 짙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 백거이(白居易)의 신악부 운동과 한유(韓愈)·유종원(柳宗元)의 고문운동이 일어났다. 고문운동은 한유가 창도했는데, 그는 1,000여 년 동안 숭상해온 변려체의 문장을 일소하고, '문장복고'와 '문이재도'를 주장했다. 같은 시대의 유종원은 고문운동의 또 다른 대표자로서, 고문체를 운용하여 산수유기문과 소품문을 창작했다. 고문운동은 또한 당대 전기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전기는 일반적으로 고문으로 기술하여, 편폭은 짧지만 구성이 비교적 짜임새가 있다. 애정고사·협의고사·신선전기·귀신지괴 등의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외에도 변문이 성행했다.
만당(836~907) 시기에는 유미주의 풍조가 다시 일어나 시에서는 이상은(李商隱)과 같은 작가가 나왔고, 산문에서는 변려문이 다시 유행했다. 특히 이 시기에는 민간에서 유행하던 노래의 형식을 응용한 사(詞)가 유미주의 풍조와 맞물려 본격적으로 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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