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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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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아돌프 히틀러의 총리 취임 약 5주 뒤인 1933년 3월 10일 독일에 만들어진 최초의 나치 집단수용소.

뮌헨 북쪽 약 16㎞ 거리의 다하우 시(市) 변두리에 세워진 이 집단수용소는 SS(나치 친위대)가 조직한 수용소들의 모델이 되었으며 훈련 중심지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약 150개에 달하는 지부 수용소가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 여러 곳에 세워졌고 이들은 본부 수용소와 합쳐 다하우라 불렸다. 이 남부 조직과 함께 부헨발트에 중부 수용소, 작센하우젠에 북부 수용소가 세워졌으며 적어도 16만 명의 죄수가 본부 수용소를, 9만 명이 지부를 거쳐갔다. 질병, 영양실조, 육체의 억압 등 소위 '자연감소'로 적어도 3만 2,000명의 입소자들이 이곳에서 죽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입소자들이 폴란드의 집단학살수용소로 보내졌다.

다하우는 독일인 의사와 과학자들로 하여금 입소자들을 의학실험에 강제로 사용케 하기 위해 최초로 실험실을 세운 가장 중요한 수용소였다(→ 생체실험).

의사와 과학자들은 입소자를 실험재료로 삼아 ① 대기압의 급격한 증감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② 온혈동물의 냉동을 연구하며, ③ 죄수들을 말라리아에 감염시킨 뒤 여러 치료약제를 시험해보고, ④ 바닷물을 마시거나 음식이나 물을 먹지 않는 것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험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계속된 이런 실험과 혹독한 생활환경으로 다하우는 가장 악명 높은 수용소가 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이 수용소 및 다른 수용소 출신 과학자와 의사들은 뉘른베르크에서 '의사 재판'(Doctors' Trial)을 받았고 이중 7명이 사형당했다(→ 뉘른베르크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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