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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23, 더블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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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684. 7, 잉글랜드 케임브리지셔 |
국적 | 영국 |
요약 영국의 외교관·재정행정가.
영국이 네덜란드와 2회에 걸쳐 전쟁을 벌이고 공공재정 분야에서 주요개혁을 실시했다. 총리 관저가 있는 런던의 다우닝가는 바로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청교도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나 매사추세츠의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 칼리지를 제1회로 졸업했다. 청교도혁명 때에는 의회군에 가담했고 올리버 크롬웰이 호국경으로 있던 시절에는 의회 의원으로 일했으나 1660년 스튜어트 왕가의 복귀를 지지했다.
1661년 찰스 2세는 그를 영국의 무역경쟁자인 네덜란드 주재 영국공사로 임명했다. 제2차 네덜란드 전쟁(1665~67)이 일어나게 된 것은 부분적으로는 그의 타협하지 않는 외교방식 때문이었다. 1665년 하원의원으로 있던 그는 제출된 세출안(歲出案)에 대해 순전히 전쟁수행을 위해서만 자금을 사용하도록 규정한 단서조항을 붙이도록 했다. 이것은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세출 용도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경우였다. 1667년 새로 만들어진 재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새로운 회계절차를 도입했고 이것은 영국의 재정 분야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1671년 네덜란드에 다시 파견되었으나 그가 가져간 지시사항은 또 한번 분쟁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활동은 네덜란드인들의 비난을 샀으며 그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쳤다. 찰스 2세는 그를 직무유기죄로 잠시 동안 투옥했다. 곧 풀려난 그는 죽을 때까지 재정분야의 고위직을 지냈다. 그에 대한 책으로는 존 베리즈퍼드가 쓴 〈다우닝가의 대부 The Godfather of Downing Street〉(1925)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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