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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방식으로 구조화한 사물이나 체계를 이루고 있는 요소·과정·성질의 총체를 '내용'이라 하고, 이 내용 속에 존재하는 관계의 총체를 '형식'이라 한다(형식은 종종 '구조'와 동의어로 사용됨). 내용과 형식은 상관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내용없는 형식이나 형식없는 또는 구조없는 내용은 사유의 추상화 작용 속에서만 존재할 뿐, 그밖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은 형식과 내용을 형이상학적으로 분리하거나, 내용에 비해 형식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모든 시도에 반대한다. 내용과 형식의 구별은 질료와 형상의 구별에서 비롯되었고, 질료와 형상의 비변증법적 분리는 물질과 그 속성의 분리에서 비롯되었다.

데모크리토스는 사물의 형식이 원자들의 양·종류·배열순서 등에 의존하므로 형식은 대상의 내적 구조에 의해 규정된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독자적으로 운동하고 능동적으로 형상화하는 원리인 형상을 질료에 부가했다. 플라톤이 보기에 질료 자체에는 형상도 운동도 없기 때문이다. 내용은 질료이고 형식은 형상을 부여하는 이데아이다. 이와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 없는 질료나 질료없는 형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질료는 자신의 가능태에 적합한 형상만을 받아들인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형상을 질료와 대립하는 능동적·활동적·지배적인 원리로 여김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형상을 절대화하고 말았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스콜라 철학이 극복되고 자연의 독자적 영속성이 재발견되면서, 물질과 운동의 통일성 및 내용과 형식의 통일성이 강조되기도 했다. 18세기의 프랑스 유물론은 형식이 자연 안에 있고 물질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함으로써 형식의 선험성과 비물질성을 부정했다.

그러나 형식은 사물에 대해 여전히 외적인 것으로 남아 있었다.

마르크스 이전의 유물론 철학이 형식에 대한 내용의 규정적 역할을 부각시켰다면, 관념론은 일차적으로 형식을 내용에 대한 능동적 원리로 보았다. 칸트에 따르면, 형식은 경험의 자료를 정돈하기 위해 사용하는 선험적 직관형식(시간·공간)과 오성형식(범주)이며, 직관과 오성이 능동적인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헤겔은 사유의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는 칸트에 반대하는 한편 양자의 변증법적 통일을 강조했다. 어떠한 내용도 무형식적이거나 무규정적일 수 없으며, 형식은 외적인 어떤 것일 수 없다. "그러므로 구체적 내용에 형식을 외적으로 부가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이와 같은 통찰에도 불구하고 헤겔 역시 형식을 과대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발전을 규정하는 능동적 형식원리는 '절대이념'이며, 자연과 사회로 나타나는 물질적 실재는 절대이념의 타자태(他者態 Anderssein)일 뿐이다.

이른바 변증법적 유물론은 내용과 형식의 분리를 철저하게 극복한다.

이에 따르면 형식, 즉 운동과 발전, 시간과 공간은 물질에 내재한다. 형식이란 사물의 조직이나 구조에 지나지 않는다. 내용없는 형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형식이나 구조없는 내용도 없다. 내용과 형식은 상호제약한다. 이러한 상호제약 속에서 규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내용이다. 형식은 내용에 의존한다. 그러나 일단 형식이 성립하면 형식은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 형식에 대한 내용의 우위는 궁극적으로만 정당화할 수 있다.

사이버네틱스나 보편적 체계이론이 체계의 합법칙성을 연구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내용과 형식이라는 철학적 범주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요청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