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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루가 형제단' 또는 '성 루가의 형제단'의 구성원을 일컫는 말.
(독). Nazarener/Lukasbund.
이 모임은 1809년 독일의 젊은 화가들이 중세의 예술정신으로 되돌아 가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18세기 신고전주의에 반대하여 일어난 이 모임은 유럽 화단에 처음 나타난 실질적인 반전통주의 운동이었다. 나자렛파는 모든 예술이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목적을 지녀야 한다고 믿었으며 중세 후기에서 초기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들을 숭배하고 그뒤 유럽 전통주의가 보급한 화풍을 거부했다. 그들은 전통주의가 예술적 기교를 위해 종교적 이상을 버렸다고 믿었다. 또한 중세 도제제도의 밀착된 교육과 학습을 통해 예술 아카데미의 판에 박힌 기계적 과정을 벗어날 수 있다고 보고 수도원 같은 생활환경 속에서 함께 지내며 작업했다.
루가 형제단의 첫 회원은 빈 아카데미의 학생 6명이었다. 그중 4명인 프리드리히 오버베크프란츠 포르, 루드히 포겔, 요한 콘라드 호팅거는 1810년 로마로 가서 비어 있던 산이시도로 수도원에 들어가 살았다. 이곳에서 피터 폰 코르넬리우스, 빌헬름 폰 샤도우, 그밖에 이 운동에 관계했던 여러 사람들이 합류하였다. 그들은 성서에 나오는 머리 모양과 옷을 입고 지냈기 때문에 이내 조롱투로 나자렛파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자렛파의 주요사업은 중세미술인 프레스코화를 되살리는 것이었다. 다행히 로마에 있는 카사바르톨디(1815~17)와 카시노마시모(1817~19)에 프레스코 장식을 하는 큰 일거리를 얻어 이 일로 국제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카시노마시모의 프레스코 작업이 끝나자 오버베크를 빼고 모두 독일로 돌아가 이 모임은 해체되었다.
나자렛파의 그림은 대부분 종교를 주제로 종래의 자연주의 화풍을 따르고 있어 감동이 없고 등장인물이 너무 많으며, 지나치게 세부에 신경을 쓴 데다 색상이나 형태의 생동감도 부족하다. 그러나, 절실한 이상을 솔직하게 표현한 점은 뒤이은 유파들, 특히 19세기 중반에 활동했던 영국의 라파엘전파(PreRaphaelites)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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