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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영국 해군 제독 호레이쇼 넬슨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근처 아부키르 만에서 프랑스 함대를 상대로 싸워 크게 승리를 거둔 전투(1798. 8. 1).
Battle of Aboukir Bay라고도 하며, Aboukir는 Abukir라고도 씀.
1798년 프랑스 혁명군 장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영국의 무역항로를 방해하고 인도 지배를 위협할 목적으로 이집트 침략계획을 세웠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대규모 프랑스 함대가 지중해에 있는 프랑스의 한 항구에서 출항하리라는 정보를 들은 영국정부는 영국함대 총사령관인 세인트 빈센트 백작에게 명령을 내려 호레이쇼 넬슨 해군소장으로 하여금 툴롱 해역으로 정찰을 나가 프랑스 해군의 움직임을 감시하도록 했다. 넬슨이 탄 배는 폭풍에 돛대가 부러졌고, 그의 프리깃함들은 뿔뿔이 흩어진 채 지브롤터에 있는 영국군 기지로 돌아왔다.
그러나 세인트 빈센트 백작이 보낸 배들이 6월 7일 넬슨과 합류함으로써 넬슨 함대의 전력은 14척으로 보강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프랑스 함대는 영국의 전함을 교묘히 피하여 먼저 몰타로 항진했고 6월초에 영국에게서 이 섬을 빼앗았다. 몰타에서 1주일을 보낸 나폴레옹은 함대를 이끌고 주요목표인 이집트로 향했다. 그러는 사이 넬슨은 툴롱이 텅 빈 것을 발견하고 프랑스의 목적지를 정확하게 알아차렸다.
정찰용 프리깃함이 부족하여 프랑스 함대를 놓쳤으나, 프랑스 함대보다 먼저 이집트에 도착했다. 알렉산드리아 항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서둘러 시칠리아 섬으로 돌아가 물자를 공급받은 넬슨은 프랑스 함대를 찾아낼 결심으로 다시 이집트로 갔다. 8월 1일 넬슨은 아부키르 만에 정박하고 있던 프랑수아 폴 브뤼에스 데겔리에르 제독이 지휘하는 13척의 전함과 4척의 호위함으로 이루어진 프랑스 본대를 찾아냈다.
해가 지기까지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고 브뤼에스의 배들은 아부키르 섬의 해안 포대가 측면을 방어하고 있는 모래 만에 안전하게 정박해 강력한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으나, 넬슨은 기습공격을 명령했다. 영국전함 몇 척은 프랑스 전함의 앞쪽을 돌아 안으로 파고들어 그들의 뒤쪽을 공격했다.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넬슨은 머리에 부상을 입었다.
전투는 오후 10시경 고비에 이르렀다. 그때 정박해 있던 함대 가운데 가장 크고 120개의 포를 갖춘 브뤼에스의 기함이 제독을 비롯한 대부분의 병사들과 함께 파괴되었다. 밤새도록 전투를 계속해 마침내 2척의 전함을 제외한 프랑스 해군의 모든 전함이 파괴되거나 나포되었다. 영국군은 약 900명의 사상자를 냈고 프랑스군은 그 10배에 이르는 사상자를 냈다.
나일 강 전투는 여러 가지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 전투 때문에 나폴레옹군은 이집트에서 고립당해 결국 붕괴되었다. 또한 영국은 적절한 때에 프랑스에게서 몰타를 되찾게 되어 위신을 세웠고 지중해 통제권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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