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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직

다른 표기 언어 金亨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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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평남 대동, 1894
사망 1926
국적 북한

요약 북한 자료에 따르면, 평양 숭실학교를 마쳤고, 1917년 3월 23일 강동군에서 항일운동 단체인 조선국민회를 결성했으며, 활동과정에서 일제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으며, 석방된 후에는 만주로 망명했다고 한다.
비합법적인 조선국민회와 함께 학교계·비석계·향토계와 같은 계(契) 형식의 합법적인 조직을 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중강·무송 등지에서 광제의원·순천의원·무림의원 등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의료사업과 독립운동 지원자금을 마련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에 가담했다고 전해진다. 그밖에도 임강 조선인 학교 설립, 선진적인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청년회의 조직 등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고 북한 문헌들은 주장하고 있다. 북한 정권수립 이후 그의 아내 강반석과 함께 '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로 추앙받아 '김형직 사범대학'과 '김형직 인민병원' 등이 설립되었다.

평양 숭실학교를 마쳤고, 1917년 3월 23일 강동군에서 항일운동 단체인 조선국민회를 결성했으며, 활동과정에서 일제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으며, 석방된 후에는 만주로 망명했다고 한다. 조선국민회에 대해서는 '반일 해방운동 발전에 있어서 획기적 전진이며 3·1운동을 전후한 최대의 반일 지하혁명조직'이라는 일부 평가가 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전개된 국내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의 고양에 따라 보다 적극적으로 조선국민회에 참여하는 분위기가 강했으며, 이 조직은 동만주를 비롯한 해외운동과의 연계에도 적극적인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비합법적인 조선국민회와 함께 학교계·비석계·향토계와 같은 계(契) 형식의 합법적인 조직을 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중강·무송 등지에서 광제의원·순천의원·무림의원 등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의료사업과 독립운동 지원자금을 마련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에 가담했다고 전해진다. 그밖에도 임강 조선인 학교 설립, 선진적인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청년회의 조직 등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고 북한 문헌들은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 정권수립 이후 그의 아내 강반석과 함께 '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로 추앙받아 '김형직 사범대학'과 '김형직 인민병원' 등이 설립되었다. 그의 부인인 강반석도 '반일부녀회조직' 등을 결성, 공산주의적 여성운동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평가받으면서 오늘날 북한에서는 '어머님 따라 배우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김형직과 관련된 자료는 전적으로 북한의 자료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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