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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충남 논산, 1901. 11.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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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미상 |
국적 | 한국 |
요약 시인.
한국시사에 있어서 신경향파 시를 처음으로 또 가장 많이 썼다.
호는 석송(石松).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920년대에 〈동아일보〉·〈조선일보〉·〈매일신보〉 기자를 거쳐 〈동아일보〉 사회부장,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1924년 '파스큘라'에 가담하면서 경향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1925년 카프의 창립 발기인으로 활동했으며, 같은해 잡지 〈생장〉을 주재했다. 해방 뒤 공보처장을 지냈으며, 6·25전쟁 때 납북되어 생사를 알 수 없다.
1920년 〈개벽〉에 〈이향 離鄕〉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초기에는 미국의 민중시인 휘트먼(W. Whitman)에 심취하여 1921년 〈개벽〉의 창간 2주년 기념호에 휘트먼을 소개하였고, 그의 영향을 받은 대표작 〈아, 지금은 새벽 네 시〉(개벽, 1924. 11)를 발표했다. 주로 민주주의를 따르고 사회제도 및 역사의 구속 등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노래했다.
그밖에 시 〈죽음의 미〉(개벽, 1921. 2)·〈무산자의 절규〉(개벽, 1921. 6)·〈햇빛 못 보는 사람들〉(개벽, 1922. 2)·〈숨쉬는 목내이〉(개벽, 1922. 3) 등을 발표했다.
박팔양은 평론 〈조선신시운동개관〉(조선일보, 1929. 2. 28~3. 1)에서 그의 시는 힘있고 굳센 특색이 있다고 하면서, 후일 신흥 계급운동이 일어나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고 했다.
당시 〈창조〉·〈폐허〉·〈장미촌〉 등에서 보이던 퇴폐적 낭만주의나 유미주의 문학과 달리 당대의 비참한 생활과 불평등하고 부조리하며 자유없는 현실을 거부하는 의식을 읊었다. 1979년 가족들이 시 124편을 모아 〈석송 김형원시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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