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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평남 평양, 1893. 3.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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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60. 1. 4 |
국적 | 한국 |
요약 서양화가.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고희동·김관호에 이어 3번째로 일본 도쿄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1917년 졸업 후 김유방(金惟邦)이라는 필명으로 문학비평활동을 주로 했다.
1912년 〈개벽〉 1월호에 실린 〈'비평을 알고 비평을 하라'를 읽고〉에서는 당시 조선 예술계를 '임시로 만들어놓은 위조물이 풍미하고 있는 곳'으로 파악하고 이를 침묵으로 감싸는 것은 용서하기 어려운 죄악이라 했다. 같은해 3월 〈개벽〉에 톨스토이 예술론을 소개했다. 그는 민본주의의 새로운 분위기가 일고 있는 조선에 민중주의 예술론자인 톨스토이의 예술론을 소개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 했고, 이후에도 예술과 현실을 연결시켜 이해하려는 내용의 글을 많이 발표했다.
초기 서양화가의 한 사람으로서 서양화의 보급활동에도 관여했다. 〈동아일보〉에 〈서양화의 계통 및 사명〉(1920. 7. 20~21)을 기고했으며, 1925년 설립된 평양 삭성미술연구소에서 김관호와 함께 서양화를 가르쳤다. 1940년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지금 전하는 그의 작품은 1917년 도쿄 미술학교 졸업작품인 〈자화상〉 1점뿐이다.
충실한 형태묘사에 광선효과를 그려내는 데 주력하여 그무렵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던 외광파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특히 그림자 부분을 보라색으로 칠한 것이 눈에 띈다. 당시 도쿄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가르쳤던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 오카다 사부로스케[岡田三郞助], 와다 에사쿠[和田英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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