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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한말의 의병장.
호는 석포(石浦), 별명은 원국(元局). 1873년 광주군 당부면 북촌리에서 태어났다. 의병 김원범(金元範)이 동생이다. 1905년 9월 광주군 송정읍 시장에서 일본 군인을 죽이고 피신했다가, 1906년 3월 동생 원범과 함께 광주 무등촌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교전을 하였다.
이듬해 김태원(金泰元) 부대와 합세하여 일본군 광주수비대와 교전, 40여 명을 사살하였다. 그 뒤 각처에서 적과 교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그 해 6월 광주군 우암면에서 접전 끝에 대패하고 일본군에 붙잡히면서 의진이 해산되었다. 그러나 그는 다행히 목포로 압송되는 도중 일본군을 죽이고 함평의 먹굴산으로 피신하였다. 같은 해 12월 김준(金準)의 휘하에 들어가 선봉장이 되었다.
1908년 1월 1일 의병을 이끌고 창평 무동촌에서 일본군과 교전한 데 이어, 11일에는 장성 낭월산, 3월 7일에는 영광 토산, 25일에는 광산 어등산(魚等山)에서 각각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같은 해 9월 그는 광주 선암시장(仙岩市場)에서 의병장 조경환(曺京煥)을 만나 동생 원범이 조경환 의진에서 활약하고 있음을 알고 조경환 의진의 선봉장이 되었으며, 이때 동생은 도포장(都砲將)에 임명되어 형제가 함께 활약하였다.
1908년 음력 12월 19일 조경환이 순국하자 그 군사를 인계받아 의병장이 되어 의병 500여 명을 이끌었다. 1909년 3월 그는 장성군 남일면에서 150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교전했으며, 4월 9일에는 30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함평군 적량면과 여황면, 오산면 등을 근거지로 하여 일본군과 싸우던 중 광주 교외에서 일본 헌병 요시다[吉田]를 사살하였다.
5월 19일에는 불갑산에서 교전하였다. 1909년 12월 5일 영광 불갑산으로 이동하다 일본군과 교전 중 체포된 뒤 대구감옥에서 총살을 당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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