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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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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미상 |
국적 | 신라, 한국 |
요약 7세기에 활동한 신라시대의 진골귀족.
661년(무열왕 8)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참여했다. 당시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은 계백의 결사대와 황산벌(黃山伐) 싸움을 치르느라 당군과 약속한 기일을 넘겼다.
당군의 진영에 신라 장군들이 도착하자 소정방(蘇定方)은 약속 기일을 어겼다는 명목으로 독군(督軍) 김문영을 군문에서 참수하여 신라군의 의기를 꺾으려 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당시 김유신이 "당군과 일전을 겨룬 뒤 백제를 치겠다"고 강력히 대응하자 소정방의 우장(右將) 동보량(董寶亮)이 발을 구르며 말려 그만두었다고 한다.
백제를 멸망시킨 뒤 그해 7월에는 수약주(首若州:지금의 춘천) 총관이 되었다. 668년(문무왕 8)에는 대아찬으로 비열성주행군총관(卑列城州行軍摠管)에 임명되어 평양성 공격에 나서 사천원(蛇川原)에서 고구려군을 크게 무찔렀다. 그뒤 683년(신문왕 3)에 신문왕이 새 부인으로 김흠운(金欽運)의 딸을 맞을 때, 이찬의 관등에 있으면서 파진찬 삼광(三光:김유신의 아들)과 함께 택일에 참가했다. 694년(효소왕 3)에 상대등이 되었다.
695년 개원(愷元)이 상대등에 임명된 것으로 보아 김문영은 사망했거나 늙어서 사퇴한 것으로 보인다.→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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