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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 국보(1997.01.01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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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충청남도 공주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백제의 보살상. 얼굴과 몸이 길쭉한 것이 특징이며 머리는 둥글게 틀어올렸고 삼면보관을 썼다. 왼손에는 정병을 들고 오른손은 어깨에 걸쳐서 몸 옆으로 내려오는 천의의 한 자락을 잡고 있다. 천의의 흐름은 몸 앞에서 확실히 표현되지 않았으나 양쪽 다리 옆으로 차분히 흘러내리고 있다. 정병을 들어 관음보살로 추정되며, 보관·영락·천의의 표현 등 기본형식이 7세기 전반의 상으로 추정되는 부여규암면출토금동관음보살입상과 비교된다.
국보(1968.12.19 지정). 높이 15.2㎝. 호암미술관 소장.
얼굴과 몸이 길쭉한 것이 특징이며 머리는 둥글게 틀어올렸고 삼면보관을 썼다. 두 눈은 감은 듯한 모습이며 입을 다물고 근엄한 표정이다. 귀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은 어깨 위에서 몇 가닥으로 갈라져 있고 신체는 원기둥처럼 가늘고 길다.
왼손에는 정병을 들고 오른손은 어깨에 걸쳐서 몸 옆으로 내려오는 천의의 한 자락을 잡고 있다. 몸에 밀착되게 입은 치마는 몸의 굴곡을 은근히 드러내며, 다리 위로 흘러내린 옷자락이 무릎 위에서 굵은 U자형 주름을 이루고 있다.
천의의 흐름은 몸 앞에서 확실히 표현되지 않았으나 양쪽 다리 옆으로 차분히 흘러내리고 있다. 어깨에 걸쳐서 몸 앞으로 흘러내린 영락은 배 중앙에서 연꽃 모양이 장식된 원반(圓盤)을 중심으로 교차하고 있다. 대좌는 안상을 투각한 6각형의 복련좌(伏蓮座) 위에 앙련좌(仰蓮座)를 올린 형태이며, 넓고 부드러운 윤곽선을 지닌 연잎이 백제 연화좌의 특징을 보여준다. 상의 뒷면은 거의 조각되지 않았고 목이 들여다보이며 광배를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보살상은 정병을 들어 관음보살로 추정되며, 보관·영락·천의의 표현 등 기본형식이 7세기 전반의 상으로 추정되는 부여규암면출토금동관음보살입상(국보, 1997.01.01 지정)과 비교된다. 그러나 경직된 얼굴표정이나 신체의 입체적인 표현에서는 규암면상보다 앞서는 단계로 추정되며 대좌의 형식에서도 차이를 보여준다. 대체로 6세기말 또는 7세기초의 백제 제작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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