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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일대에 처음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 초기로 추정된다.
목축과 농업에 종사하던 부족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콜치스 라고 알려진 전설적인 부(富)의 땅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까지 알려졌다. BC 65년에 로마 제국에 합병되었고,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AD 337년 이후 3세기 동안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 간의 분쟁에 휘말렸다. 654년 이후 아랍의 칼리프들이 이 일대를 다스렸는데, 그들은 티플리스(트빌리시) 시를 거점으로 토후국을 건설했다.
8세기 말부터 12세기까지 아르메니아에서 기세를 떨쳤던 바그라티드 왕조가 조지아인들과 카프카스 혈족이 살던 이 지역을 통일했다.
바그라트 3세(975∼1014)는 조지아 동부와 서부의 모든 공국을 하나로 통합했다. 조지아는 타마라 여왕의 재임(1184∼1213) 동안 동쪽의 아제르바이잔에서 북서쪽으로 체르케스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범(汎)카프카스 제국을 이루면서 최고의 번영을 누렸다.
범카프카스 제국이 몽골의 침략을 받은 1220년부터 조지아의 황금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1386∼1403년에 티무르의 맹공격을 받고 경제적·문화적으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타격을 입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함락되면서 조지아는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와 교류할 수 없게 되었고, 그후 3세기에 걸쳐 투르크와 페르시아인들의 계속되는 침공에 시달렸다.
1783년 러시아와 조지아 조약을 맺어 독립을 보장받는 대신 러시아의 종주권을 인정하기로 했으나, 1795년 페르시아의 공격을 받았을 때 러시아로부터 원조를 전혀 받지 못했으며, 1801∼64년 조지아 내의 왕국들은 차례로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조지아를 모든 외부세력으로부터 보호하여 그 실체가 말살되는 것을 막아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킵차크 한국).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조지아는 1917∼21년에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지배권에 속하는 자카프카지예라는 이름의 나라에서 자카프카지예 독립국으로, 이어 조지아 독립국이 되었다. 조지아 독립국은 처음에는 독일 보호령이었으나 이어 영국에 점령되었다가 1920년 1월 사실상 독립했고, 1921년 연합국으로부터 합법성을 인정받았다.
1921년 2월 적군에 의해 소비에트의 지배를 받는 자카프카지예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1936년에 조지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대체되면서 소련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1990년 조지아 역사상 최초로 복수 정당이 참여한 가운데 자유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독립을 기치로 내세운 비공산 연합이 승리해 정권을 잡았고, 1991년 4월 9일 조지아는 마침내 독립을 선언했다. 초대 대통령으로는 선거에서 승리한 즈비아트 감사후르디야가 선출되었다.
그러나 감사후르디야의 권위적 통치는 지지세력의 반발을 초래했고, 1991년 말에는 내전이 발발했다. 결국 감사후르디야는 1992년 1월 대통령직에서 축출되고, 3월에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소련 외무장관 출신의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가 그의 뒤를 이었다. 조지아는 1992년 국제연합(UN)에, 1993년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했다.
1992년 북서쪽에 위치한 아브하지야 자치공화국이 분리 독립을 선언하자 조지아 정부가 군사적 대응에 나서면서 조지아는 내전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1993년 7월 러시아의 중재로 양측 사이에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으며, 이에 따라 UN 조지아 정전감시단(UNOMIG)이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아브하지야 자치공화국 및 남오세티아 내의 분리 움직임과 다른 내부적 위협들에 대처하는 한편, 미국·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우호적 관계를 통해 신생 공화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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