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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 194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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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2 |
사이트 | 국방부 홈페이지 |
요약 국방에 관련된 군정 및 군령과 기타 군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중앙행정기관. 외부의 침략과 내란에 대하여 대비하고 평상시는 군사력을 최상으로 유지하고, 유사시 군사력을 사용하여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것이 주요 업무이다.
설립 목적과 주요 업무
국방부는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평화통일을 뒷받침하며, 지역안정과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정부행정기관이다. 국방부는 국방에 관련된 군정 및 군령과 그 밖에 군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며, 국방분야에 대해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이다. 세부 업무로는 국방관계 내·외 귀빈의 초청과 국방부의 의식행사 및 의전, 국방관련 정보, 국방정책 등을 담당한다. 국군조직 및 정원관리, 국방조직의 진단 및 평가, 군사법제도, 국방예산, 세출예산 결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의 운영, 국방기본정책서 및 국방백서의 작성·발간, 한미안보협의회(SCM) 운영, 군수품조달정책, 군수지원계획 등을 담당한다.
역사
광복 이전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지고, 각지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 모여 1940년 임시정부 하에 광복군을 창설하고 1941년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1943년 영국군과 인도,버마 전선에서 연합작전을 수행했고, 1945년 5월 미국 전략첩보군(OSS)과 공동작전을 수행했다. 한국 내로 진격하기 위한 국내정진군을 8월에 편성하여 한반도로 진격하기 직전 해방을 맞았다.
창군기
해방 후인 1945년 11월 미군정 하에 국방사령부가 설치되었고, 1946년 1월 남조선국방경비대가 창설되면서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이 국방경비대를 관장하는 총사령부가 2월에 설치되었으며, 3월에는 국방사령부를 국방부로 개칭했다. 6월에는 국방부를 국내경비부(통위부)로 개칭했다.
건군기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정부 행정기관으로 국방부가 세워지고, 조선경비대, 해안경비대 등이 국군에 편입되었다. 뒤이어 국군조직법, 국방부 직제령 등이 공포되고, 1949년 8월 병역법이 공포되어 12월부터는 징병검사를 시작했다. 같은 해 4월에는 해병대가, 10월에는 공군이 창설되면서 이후 한국 군대의 기본 체제가 갖추어졌다.
전쟁 및 정비기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7월 작전지휘권을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에 위임했다. 9월에는 여군이 창설되었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공방이 지속되다가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조인된 후, 10월에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1954년 합동참모회의가 설치되고, 부대 작전권을 차례로 인수받았다. 1956년 국군의 날을 제정, 공포했고, 1960년 미국과 합의하에 국군의 정원을 60만명으로 결정했다.
국방체제 정비기
1961년에는 5.16군사정변이 일어나 군정이 시작되었다. 같은 해 향토예비군설치법이 공포되었으나 창설은 1968년에야 이루어졌다. 1962년 군형법, 군행형법, 군법회의법, 군인사법이 공포되면서 법적 체제가 정비되기 시작했다. 1963년 군인연금법이 공포되었으며, 징발법, 군속인사법, 군인보수법이 공포되었고, 합동참모본부가 설치되었으며, 국가안전보장회의법이 제정되었다.
1965년 10월 미국과의 협의 아래 베트남에 청룡부대, 맹호부대, 1966년 백마부대를 파병했다. 한국군 사상 첫 해외 파병이었던 베트남에서는 1973년 철수했다. 1966년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체결하고, 1967년 국방백서 발간을 시작했다. 1973년 해병대가 해군에 통합되었다.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발생에 이어, 12.12사태가 발생하면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정권을 잡았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위해 군병력이 동원되어 이후 많은 논란을 낳았다. 1989년 육군본부와 공군본부가 대전 계룡대로 이전했고, 해군본부는 1993년에 이전했다.
국방태세 발전기
1993년 소말리아에 공병대대인 상록수부대를 유엔평화유지군(PKO)으로 파견한 이후 조지아와 인도, 파키스탄에 군옵서버를 파견했으며, 유엔군으로부터 평시작전통제권을 환수했다. 1995년 앙골라에 공병대대를 유엔평화유지군으로 파견했으며, 여성도 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사관학교설치법을 개정했다. 1999년 동티모르에 PKO를 파견했다. 2000년 국방대학교를 창설했다. 2004년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에 파병되었다.
2007년 동명부대를 레바논에 파병했고, 2009년 청해부대를 소말리아에 파병했다. 2010년 군사이버사령부를 창설했다. 아이티 대지진으로 아이티재건지원단이 창설되었고, 아프가니스탄 재건 부대 오쉬노 부대를 창설, 파병했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자주 파병을 하게 되어 파병전담부대 국제평화지원단 온누리부대를 창설했다. 이후 아랍에미리트연합, 남수단, 리비아, 필리핀, 소말리아 등 많은 곳에 파병, 군사작전 등이 전개되었다. 또한 여성들의 군인지원 확대를 위해 여자대학 ROTC 시범대학으로 숙명여대가 선정되었다. 2012년 합동군사대학교가 창설되었고, 2015년 12월에는 해군 제주기지전대가 창설되었다.
조직 구성
국방부 조직으로 국방부 장관과 차관이 있고, 국방부장관이 부의하는 사항을 심의하는 군무회의가 있다. 그리고, 장관 아래에 국방부 업무의 대외 공표와 대언론 홍보를 담당하는 대변인, 장관 지시사항 연구, 정책과제에 관한 전문가 등의 참여 촉진과 의견 수렴, 관계부처의 정책보좌 등을 담당하는 장관정책보좌관, 주요 군사업무에 장관을 보좌하고 의전을 맡은 군사보좌관이 있다. 차관 아래로 보안, 관인 및 관인대장 관리, 문서 관련 작업 등 법무부 내 행정지원을 맡은 운영지원과, 군 사법제도 시행과 군사법원, 군 검찰기관의 운영을 맡은 법무관리관, 국방부와 그 소속기관, 산하기관에 대한 감사와 사정업무, 진정 및 비위사항의 조사·처리를 담당하는 감사관이 있다.
차관 아래 실무부서로 주요업무계획을 수립하고 종합, 조정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기획조정실, 국방정책, 전군주요지휘관회의, 국방백서 등을 담당하는 국방정책실, 군인과 군무원의 인사, 교육, 훈련 등을 담당하는 인사복지실, 군수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전력자원관리실이 있다.
소속기관으로 국립묘지를 관리하는 국립서울현충원, 국방일보 및 국군방송 등의 제작을 관리하는 국방홍보원, 국방부와 그 소속기관의 정보화업무 지원 및 국방자원관리 정보체계의 구축·운영을 담당하는 국방전산정보원이 있다.
한시조직으로 국방개혁 정책의 총괄하는 군구조·국방운영개혁추진실이 2017년 7월 25일까지 운영된다. 지원조직으로 군 복무 시 특수임무 수행자와 유족들을 지원하기 위한 업무를 지원하는 특수임무수행자보상지원단, 1980년 신군부가 실시한 계엄상황에서 설치한 삼청교육대에 의한 피해자들을 보상하는 업무를 지원하는 삼청교육피해보상지원단, 1980년 신군부가 실시한 전국 사찰 조사를 통해 피해를 본 불교계 인사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업무를 지원하는 10·27법난명예회복지원단, 6.25전쟁 이후 지뢰에 의해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 대한 지원 업무를 지원하는 지뢰피해자지원단, 공군 한국형 전투기(KF-X)사업을 지원하는 보라매사업지원TF, 주한미군기지를 후방으로 이전하는 사업을 지원하는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이 있다.
장관 소속으로 징집·소집 그 밖의 병무행정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병무청이 있고, 방위력 개선사업, 군수물자 조달 및 방위산업 육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방위사업청이 있다. 산하 공공기관으로 전쟁에 관한 자료 수집과 보존, 전쟁을 통한 교훈을 교육하는 업무를 담당한 전쟁기념사업회 국방전반에 관한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한국국방연구원이 있다.
현황
국방부 청사의 소재지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2이며, 2016년 기준 군부대 조직을 제외한 국방부 정원은 935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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