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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60년대초 기성작가군의 구상계열과 전후세대작가들의 앵포르멜(informel) 운동 사이의 대립이 지상(紙上)을 통해 산발적으로 일어난 논쟁.
일반적으로 '구상·추상 논쟁'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 등 새로운 구상경향의 등장으로 벌어진 구상과 추상간의 대립을 말하며, 한국에서는 약 10년 뒤에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일어났다. 당시 한국 미술계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으며 이종우·이병규·도상봉·장발·김환기·김인승·박영선 등 주로 구상작가들이 서양화 심사위원으로 장기간 재임하면서 화단의 주류를 이루었다. 이와 달리 1950년대 후반 청년작가를 중심으로 본격화된 추상미술은 이에 점차 대립되는 양상을 띠었다.
당시 추상계열은 1957년 국전에서 소외된 기성추상작가들이 결성한 '모던아트 협회'와 전위주의 미학으로서의 앵포르멜을 주창한 '현대미술가협회' 등의 발족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당시 국전에서는 풍경화나 여인좌상 등 아카데미즘적 자연주의 회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서구현대미술의 이념을 받아들여 기성의 권위에 도전하고자 하는 앵포르멜 운동과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추상계열이 양적으로 커지고 한국미술가협회에서의 비중도 높아져 국제적 참여를 독점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이 심화된 1963년경 구상계열이 산발적으로 반발하여 구상·추상 논쟁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61년 제10회 국전에서는 서양화부문에 공식적으로 반추상(半抽象)·추상을 채택하여 논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그러나 이 논쟁은 정연한 논리의 전개나 과학적인 상호비판보다는 미술계의 이권다툼 등 감정적인 폄하를 동반한 산발적인 의견표명을 크게 넘어서지 못했다. 대표적인 글로는 장두건의 〈미술에 있어서의 전위〉, 박서보의 〈사실과 구상〉, 이열모의 〈추상은 예술이 아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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