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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우리나라 최초의 고대국가가 세워진 지리적 위치.
고조선의 위치에 대해서 아직까지 학계의 통일된 정설은 없다. 다만 현재까지 발표된 다양한 견해들을 대략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고조선은 처음부터 망할 때까지 지금의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 유역에 위치했다는 견해이다.
문헌상의 근거로는 〈사기〉 조선전에 조선과 연(燕)의 경계로 표시하고 있는 패수(浿水)를 청천강으로,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단군이 도읍으로 정한 아사달(阿斯達)을 평양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성과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한의 무제에 의해 설치된 4군 중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는 평양 일대에 다수 분포하고 있는 한식 유적·유물들을 통해 볼 때 지금의 평양 일대였고, 낙랑군은 위만조선의 도성이었던 왕검성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위만조선의 도읍인 왕검성의 위치는 자연히 평양 일대라는 것이다. 그럴 경우 고조선의 영역은 현재의 평안남도 일대로 국한되는 셈이다.
이 견해는 낙랑군의 위치나 고조선 최후의 단계인 위만조선 도성이었던 왕검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올바른 해명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고조선 역사와 문화의 기원은 위만조선보다 훨씬 이전 시기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위만조선의 위치만으로는 전체 고조선의 위치를 논할 수 없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다음은 현재의 중국 랴오닝 성 일대에 위치했다는 견해이다.
이는 중국의 고문헌에 나타나는 강이나 산 등의 위치 비정에 의해 패수를 다링 강으로, 열수를 랴오허 강으로 본 결과 나타난 견해이다. 또한 여기에 청동기문화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가 뒷받침되기도 했다.
고조선 전기의 문화는 비파형동검 문화이며 비파형동검은 랴오허 강을 중심으로 한 랴오닝 성 일대에 밀집하여 분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고조선의 영역은 남만주 일대와 한반도 서북부를 포괄하는 광대한 지역을 포함하게 된다. 하지만 이럴 경우 평양 일대임이 분명한 낙랑군의 위치와 맞지 않는 점과, 과연 청동기 전기에 이처럼 광대한 영토를 소유하는 영역국가가 발생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점이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이동설이 있다.
이 견해는 고조선의 전기 단계에는 현재의 랴오닝 성 일대에 고조선의 중심이 위치했으나 연나라 장수 진개의 침공 이후 서쪽 영토 2,000리를 빼앗기고 그 중심지가 평양 일대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BC 4세기 이전 고조선의 중심지는 랴오닝 성 일대였으나, 위만조선의 도성인 왕검성이나 낙랑군의 치소(治所)인 조선현의 위치는 평양 일대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도 앞의 두 견해와 마찬가지로 고고학적 연구성과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비파형동검 문화가 랴오닝 성 일대를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에 비해 그 후신이라고 볼 수 있는 세형동검의 중심지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서북지방이라는 점이다. 이동설은 몇 가지 세부적으로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고조선의 위치문제에 관해서는 가장 합리적인 설명으로 간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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