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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고려 후기 경(經)·사(史)를 가르치기 위해 설치한 관청.
고려시대에는 한당유학의 영향으로 경학보다 한문학이 중요시되었고, 당시 유사들은 시문학에 몰두해 경·사를 널리 아는 자가 없었다.
이에 충렬왕 때 경·사를 중시하는 교령을 반포하고 경·사에 능통한 사재윤 김제(金磾)·정랑 최옹(崔雍)·좌사간 방유 등 7명을 경사교수에 임명하여 국자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했다. 그뒤 성리학이 전래됨에 따라 유학연구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지자 1296년(충렬왕 22) 독립적인 특수관청인 경사교수도감을 설치했다.
이름난 학자로서 밀직부사로 치사한 이산(李)과 전법판서 이진(李瑱) 을 경사교수도감사로 임명하여 7품 이하의 관원에게 경서와 사서를 가르치게 하고, 이 가운데 성적이 뛰어난 자를 우대하여 발탁·등용했다. 이와 같은 새로운 관청이 설치되고 학관을 두게 되자 일반관료뿐 아니라, 선비들이 모여들어 경서를 연구하게 되었다. 이는 당시 성리학 도입에 따른 경전 연구가 이곳을 중심으로 추진되었음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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