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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버스턴

다른 표기 언어 Piers Gaveston
요약 테이블
출생 1284경
사망 1312. 6. 19, 잉글랜드 워릭셔 워릭
국적 영국

요약 콘월 백작.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2세의 지나친 총애로 탐욕스럽고 오만해져서, 결국은 그를 시기한 영주들에게 살해당했다.

가스코뉴 출신 기사의 아들로 태어나,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의 아들이며 후에 왕위를 계승한 에드워드 2세의 의형제이자 친구로 궁정에서 자랐다. 강인하고 다재다능하며 야심가였던 그는 에드워드의 젊은 시절에 큰 영향을 끼쳤다. 1307년초 에드워드 1세는 그를 잉글랜드에서 추방했으나 왕이 죽은 지 몇 달 후 되돌아와(1307. 7) 곧 에드워드 2세의 수석고문관이 되었다.

콘월 백작에 임명된 개버스턴은 왕에게서 토지와 돈을 받았고, 글로스터 백작 길버트 드 클레어(1295 죽음)의 딸이며 에드워드의 조카딸 마거릿과 결혼함으로써 부와 지위를 더욱 높였다. 1308년 에드워드 2세가 잠시 프랑스에 가 있는 동안 섭정을 했고 그해 2월에 있었던 왕의 대관식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들이 영주들의 분노와 시기를 샀고, 토너먼트(중세 기사의 마상시합)에서 보인 개버스턴의 뛰어난 기술이나 오만불손한 행동도 그들의 분노를 고조시켰다. 에드워드 왕은 개버스턴을 총애했으나 그를 추방하라는 영주들의 압력에 못이겨 부왕의 직위를 주어 아일랜드로 보냈으며 그곳에서 개버스턴은 약 1년간 지냈다.

1309년 7월 몇몇 영주들의 지지로 에드워드의 부름을 다시 받게 된 개버딘은 전보다 더욱 오만해져 이전의 감정을 또다시 불러일으켰다. 1311년 왕은 칙령기초위원회(勅令起草委員會) 선출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들이 만든 법령에는 개버스턴의 영구추방 규정이 들어 있었다. 그러자 개버스턴은 은퇴해 플랑드르에 가 있다가 1311년말에 은밀히 영국으로 되돌아왔다. 에드워드가 곧 그를 복권시키자 영주들이 반기를 들었다.

결국 왕에게 버림받은 그는 1312년 5월 스카버러에서 펨브로크 백작인 에이머 드 발랑스에게 투항했고 옥스퍼드셔의 데딩턴으로 보내진 뒤, 워릭 백작인 가이 드 비첨에게 체포당했다. 워릭 성으로 압송된 개버스턴은 워릭 근처의 블랙로힐에서 참수되었다. 1315년 그의 사체는 왕의 명령에 따라 성대한 의식과 함께 허트퍼드셔의 킹스랭글리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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