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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61, 충남 예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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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01. 7. 3, 서울 |
국적 | 한국 |
요약 초기 천주교의 순교자.
양반 집안의 딸로 태어났으나 어릴 때부터 비상한 재주를 보여 이를 걱정한 부모가 아들있는 홀아비 홍지영(洪芝榮)에게 시집보냈다. 결혼하여 딸을 낳고 가정생활에 충실한 듯했으나, 1786년 이단원(李端源)이 예산에 내려와 천주교를 전하자 이에 입교했다.
주변의 많은 친지들에게 전교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1791년 신해박해 당시 투옥되어 고난을 겪었다. 이후 남편과 이혼하고 시어머니·아들·딸과 함께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신해박해 이후 천주교 재건운동에 따라 1794년 중국에서 신부 주문모(周文謨)가 입국하자 그를 도와 천주교 전교에 힘썼다.
1795년에는 황사영과 더불어 주문모에게서 세례를 받고 '골롬바'라는 영세명을 얻었다. 1795년 한영익(韓永益)의 밀고로 주문모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지자 그를 자기집 나뭇광에 숨겨주었으며, 6년 동안 그를 자기 집에 기거하게 하면서 전교활동에 힘썼다. 주문모는 그녀의 집에 명도회(明道會)를 설립하여 교리교육에 힘쓰는 한편, 그녀를 부녀회장으로 삼아 부인들에 대한 전교를 담당하도록 하여 왕족의 부녀자들을 입교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1801년 다시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 최필공·이단원·정약용·이승훈 등이 체포되었을 때 함께 체포되어 서대문 밖에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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