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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임영관 삼문

다른 표기 언어 江陵 臨瀛館 三門 동의어 강릉 임영관 삼문, 江陵 臨瀛館 三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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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국보(1962.12.20 지정)

요약 국보(1962.12.20 지정). <임영지>에 의하면 강릉객사는 936년 본부객사로 지정되어 임영관의 창건을 비롯해 모두 83칸 정도의 건물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객사문 앞에 걸려 있는 현판은 1366년 공민왕이 친필로 쓴 것이라고 한다. 일부 전각들은 1929년 강릉공립보통학교 설립으로 인해 헐리고 지금은 객사문만이 남아 있다. 객사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집 3문으로서 남향이며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과 옆면만 단을 두어 쌓은 기단은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 보수된 것이고, 초석은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은 화강석으로 비교적 둥근 모양이다. 그 위에 바깥기둥은 배흘림의 원기둥을, 건물 중앙부의 기둥은 민흘림의 4각기둥을 세웠다. 지붕은 맞배지붕에 장연만 사용한 홑처마집으로 고려시대 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국보(1962.12.20 지정). 〈임영지 臨瀛誌〉에 의하면 강릉 객사는 936년(고려 태조 19) 본부객사로 지정되어 임영관의 창건을 비롯해 전대청·중대청·동대청·낭대청·서헌·월랑·삼문 등 모두 83칸 정도의 건물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1366년(공민왕 15) '임영관'(臨瀛館)이라는 판액을 공민왕이 친필로 썼다고 하는데 현재 객사문 앞에 걸려 있는 현판이라고 전한다. 위에 기록된 일부 전각들은 여러 번 중수를 거치며 보존되어오다가 1929년 강릉공립보통학교 설립으로 인해 헐리고 오늘날 객사문만이 남아 있다.

공민왕의 글씨

공민왕의 글씨, 강릉 객사문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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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집 3문으로서 남향해 있으며 주심포 형식이다. 기단은 앞면과 옆면만 단(段)을 두어 쌓았는데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 보수된 것이고, 초석은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은 화강석으로서 비교적 둥근 모양이다. 그 위에 기둥을 세웠는데 전·후 면의 바깥기둥은 배흘림의 원기둥을, 판문이 달린 건물 중앙부의 기둥은 민흘림의 4각기둥을 세웠다.

그 옆으로 판문이 달리는 곳에 각각 신방목과 문지방을 받쳐주는 막이돌을 놓고, 그 위에 문을 달기 위한 문선과 판문 등이 있다. 기둥 간격에 사용된 척도는 송대(宋代)의 영조척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원기둥의 배흘림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목조건축물 중 가장 뚜렷한 것으로 기둥 중앙부가 가장 굵고 기둥 상부가 가장 가늘어 약 4치 이상의 차이를 보인다. 대들보는 그 단면이 고려시대의 다른 건물과 같이 뚜렷하게 밑이 좁고 위가 넓은 항아리 입면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공포는 헛첨차가 있는 주심포 형식이며, 주두와 소로의 굽에 곡(曲)을 두고 굽 밑에는 굽받침을 두어 전반적으로 첨차의 변형으로 나타난 쇠서의 초기적인 형태를 보인다. 도리 밑에는 투각된 화반과 포대공이 있고 지붕은 맞배지붕에 장연만 사용한 홑처마집으로서 고려시대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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