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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산화전민항일운동

다른 표기 언어 甲山火田民抗日運動

요약 1929년 함경남도 갑산의 화전민이 일제의 화전민추방정책에 대항하여 일으킨 항일운동. 주민들은 함경남도 도청과 총독부에 강력히 항의했으며, 신간회와 같은 사회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며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이 운동은 각 계층의 연대를 보여주어 1930년대 농민운동이 발전하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가진다.

일제의 식민농업수탈정책에 의해 농촌에서 쫓겨난 화전민의 생계문제가 총독부의 화전정리방침에 따른 폐경정책(廢耕政策)과 대립하는 상황에서 전개되었다. 갑산군 보혜면 대평리 펑퍼물지역에는 수년간에 걸쳐 모여든 이농민(離農民)들과 1928년 수재를 당한 함경도민들이 모여 자치조직과 촌장을 두고 화전을 일구었다.

1929년초에 총 호구수는 대략 200호, 1,000여 명에 이르렀다. 1929년 4월경부터 혜산리 영림서에서는 산림보호라는 미명 아래 화전민을 추방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강하게 저항하자, 무장을 한 총독부 관헌은 6월 16일부터 5일 동안 가옥을 불사르고 화전을 짓밟았다. 관헌의 강경한 태도에 주민들은 함경남도 도청과 총독부에 진정하는 한편, 신간회 등 여러 사회단체에 호소했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신간회에서는 김병로(金炳魯)를 파견하여 진상조사를 했고,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기관이 사건의 진상을 보도하는 동시에 각 사회단체는 갑산화전민구축사건 대책강구회를 조직해 후원활동을 벌였다. 이후 사태의 진전은 보도금지로 말미암아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당시 항일운동가의 회상기 〈서광 曙光〉을 통해 미루어볼 때 주민들이 지속적인 투쟁을 벌여 그 해 수확의 허용과 이주지에 대한 새로운 안을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이 항쟁은 각계 각층과 연대를 형성하면서 1930년대 농민운동의 질적 발전을 시사해준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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