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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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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폴란드에 속해 있다가 1772년 오스트리아에 합병되었고 20세기에 들어와 폴란드에 반환되었으나 이후 폴란드·소련 영토로 양분된 역사적 지역.
(영). Galicia. (독). Galizien. (러). Galytsiya.

동갈리치아는 중세 때 헝가리, 폴란드, 키이우 공국, 볼리니아 공국 사이에 있었으며 비옥한 토지와 중요한 상업적 이해관계 때문에 이웃 나라들이 탐을 냈다. 이 동갈리치아(붉은 루테니아 또는 붉은 루시라고도 함)는 981년 블라디미르 1세(블라디미르 대공)에 의해 키이우 루시(Kievan Rus)에 통합되었고, 1087년에는 할리치(갈리흐) 주변을 중심으로 드네스트르 강 위쪽과 즈브루치 지류 동쪽, 산 강(江) 상류 서쪽에 자리잡은 독립 공국이 되었다. 그뒤 1세기 동안 부유하고 강력한 공국으로 발전했다.

1199년 볼리니아 공(公) 로만은 갈리치의 보야르들의 추대로 할리치에서 왕좌에 올랐으며, 1200년 볼리니아(또는 로도메리아)와 갈리치아를 통합했다. 그와 그의 아들 다닐로(1238~64 재위)의 지배 아래 결합된 공국은 폴란드와 헝가리의 정복 야욕을 물리치고 동유럽의 중요 국가로 위치를 굳혔다. 그러나 제후와 보야르의 권력 다툼 때문에 공국의 세력이 약해졌고, 1253년에는 교황의 사절에 의해 다닐로가 갈리치아의 왕위에 올랐지만 1237~41년에 옛 키이우 영토를 이미 정복했던 몽골 칸[汗]의 종주권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갈리치아는 다른 루시 영토와는 달리 완전히 몽골 제국에 속하지는 않았다.

1323년 로만 왕조가 끊기자 보야르들은 폴란드 제후 마조비아의 볼레수아프 예지를 갈리치아 왕으로 뽑았다. 그가 죽은 뒤(1340) 폴란드 왕 카지미에슈 3세는 갈리치아를 폴란드에 합병했다(1349). 그때부터 갈리치아에는 폴란드의 젠트리 계급이 정착해 사회 지배계층이 되었고 갈리치아의 보야르들은 폴란드의 법적·사회적 제도, 로마 가톨릭교와 함께 폴란드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1772년 제1차 폴란드 분할 때 동갈리치아는 산 강과 비수아 강 사이에 있는 서쪽 영토와 함께 오스트리아에 넘어갔고, 1795년에는 비수아 강 동쪽과 서쪽의 더 많은 영토가 역시 오스트리아령이 되었다. 1786~1849년에 오스트리아는 부코비나의 영토를 갈리치아의 일부로 통합하여 다스렸다. 1815년의 조정(빈 회의) 이후에는 오스트리아령 폴란드 영토를 갈리치아 로도메리아 왕국(Kingdom of Galicia and Rodomeria)으로 불렀고, 1815년에 생긴 크라코프 공화국도 1846년 여기에 추가되었다.

1848~49년 오스트리아는 갈리치아에서 농노제를 폐지했으며, 1867년 이후에는 이 지역에 광범한 행정 자치권을 허용했다. 그러나 19세기말 동갈리치아 주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우크라이나인은 폴란드인의 지배력이 커지는 데 대항해 강력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을 펼쳤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전후 혼란을 겪은 뒤 갈리치아 전역은 폴란드령이 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소련은 동갈리치아를 우크라이나 공화국에 통합시켰다. 전쟁이 끝난 뒤 동갈리치아는 소련 땅으로 남았으나 폴란드인이 정착해 있던 서갈리치아는 폴란드로 넘어갔다.

갈리치아(Galicja)

갈리치아의 영역

ⓒ Alex Tora/wikipedia | CC BY-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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