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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안테프

다른 표기 언어 Gaziantep
요약 테이블
위치 튀르키예 중남부, 시리아와의 국경 부근 유프라테스 강 연안 지대
인구 2,066,503명 (2023 추계)
면적 6,887㎢
언어 튀르크어
대륙 중동
국가 튀르키예

요약 튀르키예 중남부에 있는 도시. 시리아 알레포 북쪽의 산지에 있으며, 유프라테스 강의 지류인 사지르수유 강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다.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고대의 통상로 가까이에 처음 건설되었다. 중세에는 '함타프'라고 불렀으며, 16세기 초에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현재는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건축물로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지은 성채유적 등으로 유명하다. 포도주와 할바와 바클라바, 페크메즈 등을 생산한다. 면적 6,887㎢, 인구 2,066,503(2023 추계).

가지안테프(Gaziantep)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자연환경/역사

시리아 알레포 북쪽의 석회암 산지에 있으며, 유프라테스 강의 한 지류인 사지르수유 강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고대의 통상로 가까이에 건설되었으며, 최근의 발굴작업 결과 일찍이 BC 4000년경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도기 파편들이 나왔다. 중세에는 함타프라고 불렀으며 시리아로 통하는 통로들을 지키는 요새 역할을 했다. 1183년 튀르크에 점령당했으며 그뒤 투르크멘·아랍인·몽골인·티무르인들에게 지배를 받았다.

16세기초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어 아이인타브(아랍어로 '화창한 봄'이라는 뜻)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1919년 영국에, 1921년에는 프랑스에 점령당해 지배를 받았다. 가지안테프는 유럽 제국의 점령에 대항한 튀르키예 민족주의자들의 근거지였다. 1922년 이 지역을 되찾자 터키 공화국을 세우는데 힘쓰고 있던 무스타파 케말(뒤에 아타튀르크라고 함)은 튀르크인의 용맹스런 저항을 기리는 뜻에서 가지안테프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 붙였는데 튀르크어로 '가지'는 '이슬람 전사(戰士)'를 뜻한다.

문화/경제

석조건물, 포장도로, 지붕있는 시장들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도시주변은 공원, 유원지, 포도원, 올리브 나무와 밤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건축물로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6세기) 때 지은 성채유적과, 11~16세기에 지은 모스크들이 남아 있다. 중세에 신학대학이었던 곳을 지금 고고학박물관으로 쓰고 있으며 이곳에는 이 지역에서 나온 히타이트의 문장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주변지역은 남쪽으로 시리아와 접하고 동쪽으로는 유프라테스 강을 끼고 있다. 포도주, 할바와 바클라바(단과자 종류), 페크메즈(포도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피스타치오, 아니스, 담배, 염소가죽 양탄자도 생산하고 있다.

고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이 지역에는 둘루크(고대에는 돌리체로, 최고신 돌리체누스의 성지)와 킬리스(아시리아어로는 킬리시), 히타이트 신왕국의 도시 사말(진지를리휘위크)의 옛터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지도
가지안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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