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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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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요업 분야에서 높은 열을 내게 하는 시설물.

일반적으로 도자기·기와를 굽는 시설을 말한다. 가마에는 승염식(昇焰式)과 도염식이 있는데, 근대 이전에는 승염식 가마가 중심이었고 현대의 가마는 대부분 도염식이다.

가마

가마, 이천도예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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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연질토기는 노천요라고 하는 원시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며 이 가마는 연료실과 적재실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청동기시대와 초기 철기시대를 지나면서 경질토기의 제작기술이 발달하고, 가마의 구조도 높은 열을 낼 수 있는 밀폐형가마[室窯]로 발전했다.

전라남도 해남군 군곡리 패총 주변에서 발굴조사된 초기 철기시대의 토기가마는 경사진 석비레 암반에 굴을 파서 봉통(가마에서 연료를 넣는 시설)을 만들고 이어서 토기를 적재할 요상(窯床:가마 몸통 부분)을 만든 후 위로 구멍을 뚫어 굴뚝을 만들었다.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일대에서 발굴조사된 삼국시대 전기의 백제 토기가마는 지하식과 반지하식이 혼재해 있으며, 반지하식의 경우 경사진 석비레 암반을 파서 벽의 일부와 요상을 만든 후 이어서 내화토로 궁륭형의 천장을 씌웠다.

전라북도 익산시 신룡리의 백제 후기(6세기) 가마와 부산광역시 두구동의 가마도 반지하식의 경사진 요상으로, 봉통으로 연료를 넣고 출입도 하는 1실 가마였다. 통일신라의 가마는 전라남도 영암군 구림리에서 경질도기와 회유경질도기를 제작했던 대단위 규모의 요지(窯址)들이 발굴조사되었다.

가마는 경사진 석비레 암반을 이용했고 봉토부분은 내화토로 축조했다. 요상은 석비레를 파고 들어간 굴식이며 요상의 끝부분에서 위로 굴뚝을 뚫어 지상으로 통하게 한 후 다시 외부에서 굴뚝을 높게 쌓았다. 요상은 경사져 있으며 요벽(窯壁)에 2개의 보조연료 투입구로 추정되는 도수리구멍이 있다. 이 보조구멍은 근대의 옹기가마에도 보이는 것으로서 도기질 가마의 특징적인 구조로 추정된다.

자기질 가마는 도기질과 같은 승염식이며, 경사진 가마구조와 외형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축조재료와 요도구, 불을 때는 방법에서 큰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기질 가마는 청자의 발생과 함께 통일신라 때인 9세기경부터 시작되었으나 아직까지 도기질 가마에서 발전해 청자를 제작했던 요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발생기의 청자요지로 추정되는 곳에는 새로운 제작도구와 구조가 보이는데, 이러한 것은 중국으로부터 청자기술의 유입과 함께 들어온 새로운 기술로 생각된다.

경기도 용인시 서리요지의 최하층에서 사각의 내화전으로 축조된 가마가 발견되었으며, 고흥군 원흥리요지, 서산시 사호리요지 등에서도 내화전이 발견되어 발생기 청자가마는 내화전과 내화토로 축조된 2가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1~12세기에 내화전 가마는 사라지고 내화토와 갑발과 돌로 축조했다. 요상은 폭이 1.0~1.5m로서 약 15° 경사지며 연소실의 길이가 길어졌고 약 2m 간격으로 측면 출입구를 설치했다.

고려 후기와 조선시대에도 가마의 기본적 구조에는 변화가 거의 없으며 폭과 길이만 커졌다. 그러나 경사진 바닥이 언제 계단식으로 변화되었는지는 현재 자료로는 밝히기 어려우며, 17세기의 순천도호부(지금의 순천시) 후곡리 백자가마의 요상이 경사져 있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이후에 현재와 같은 계단식 봉우리 가마로 전환된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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