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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경남 마산 출생. 1991년 이화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한 후 월간지 〈캠퍼스저널〉 취재부에서 기자로 일했다. 1992년 편집 디자인 회사 ‘디자인미추’에 입사, 편집 디자인 실무를 익히고 책의 인쇄와 제작 과정 전반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1994년부터 5년간 ‘끄레 어소시에이츠’에 몸담으며 본격적으로 북디자인에 입문했으며, 잡지와 사보 등의 편집 디자인, CI 디자인 등의 작업을 두루 경험했다.
‘정신세계사’의 미술부 차장을 거친 후 2000년 독립해 북디자인과 공연 및 전시 관련 편집 디자인 스튜디오 ‘디자인비따’를 열고 디자인 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7년 ‘글씨, 책에 말을 걸다’, 2008년 ‘한국캘리그래피협회 창립전’ 등에 참여한 바 있다. 문학과 인문 분야 서적의 단정하고 정돈된 디자인이 돋보이는 디자이너다.
어떻게 북디자인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됐나?
고교 시절 교지 만드는 일에 빠져 책 만드는 일을 진로로 정했다. 그래서 책과 가까운 전공인 문헌정보학과를 선택했지만 입학 후 회의를 느끼며 교지 편집실에서 학교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다. 졸업 후 〈캠퍼스저널〉이란 잡지사에서 1년간 취재 기자로 일했다. 남들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해야 하는 기자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 밤을 새면서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내가 좋아하는 책과 그림이 행복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 북디자인이라고 결론짓고 진로를 바꿨다.
회고해 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북디자인 작업은?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아닐까? 당시 지인 중 하나가 신영복 선생의 〈이어도의 아침〉 원고를 팩스로 보내 주었다. 글이 너무나 좋아 몇 번이나 따라 적으면서 읽었다. 그때 ‘돌베개’에서 〈나무야 나무야〉의 표지 건으로 연락이 왔다. 그때의 기분이란.
선생의 글이 천천히 읽히도록 만들고 싶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에 담긴 생각을 읽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한 행간을 늘리고, 과부글자(단어 중 글자가 홀로 떨어지는 것)가 없도록 뒤흘리기를 했다. 여백 속에 생각이 읽히고, 또 담기도록. 출판사, 편집자, 저자, 사진작가, 디자이너의 생각이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흐르면서 스며들어 만들어진 책이다. 그 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리디자인하게 됐다. 감옥에서 편지지로 허용되는 거친 시험지 느낌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인쇄 가능한 가장 거친 종이를 표지 용지로 썼다.
신영복, 153×224×8mm, 돌베개 1996
스케치를 하고 시안 작업을 할 때도 제목이 정해지지 않아서 신영복 선생이 쓰신 붓글씨 중에 ‘나무야 나무야’를 스캔 받아 앉혀 놓았다. 제목이 뭐가 되든 선생에게 이 글씨 느낌으로 붓글씨를 받을 생각이었다. 시안을 보던 사람들이 ‘나무야 나무야’를 제목으로 하자고 했고, 그렇게 해서 책의 제목이 정해졌다. 표지에 쓴 신영복 선생의 사진은 주명덕 선생이 찍었다. 당시 신영복 선생의 사진을 너무 경직되고 딱딱한 표정으로 찍기에 이해가 안 됐다. 너무 부자연스럽지 않냐는 내게 주명덕 선생은 인물의 행적이나 글의 내용에 부합하도록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책에 실린 사진 속 신영복 선생의 시선에는 감옥으로부터 나와 역사와 현실이 살아 숨 쉬는 곳을 직접 발로 밟으며 얻어 낸 진지한 성찰이 잘 담겨 있다. 나는 디자인이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디자인할 때의 생각, 느낌, 마음 이 모든 것이 에너지의 형태로 책에 담긴다고 믿는다.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일을 하는지가 그래서 중요하다. 편집자가, 출판사가, 디자이너가 대충 낸 것과 마음을 담아낸 것 모두가 독자에게 전해진다. 좋은 기획과 내용은 편집자에게서 디자이너에게로 건너와서 독자의 가슴속으로 가 더욱 빛난다. 좋은 원고와 작업자를 만나는 것은 그래서 디자이너에게 절반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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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디자인 작업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그 뿌리를 찾아가자면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물〉의 발행인 한창기 선생, 두 잡지의 아트 디렉터였던 ‘이가솜씨’의 이상철 대표, 당시 ‘이가솜씨’에 계셨고 후에 ‘끄레 어소시에이츠’를 만든 최만수 선생, 그리고 ‘나를 키운 팔 할’인 편집자들. 실은 한창기, 이상철 선생은 뵙고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지만 그분들의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대학 졸업 후 첫 월급의 반을 주고 산 것이 ‘뿌리깊은나무’에서 나온 20권짜리 〈민중자서전〉이었고, 〈뿌리깊은나무〉는 헌책방에 부탁해서 과월호를 구한 후 아끼면서 봤다. 최만수 선생이 작업하신 ‘이론과실천’ 책들의 디자인 또한 내게는 스승과 같았다.
당신의 북디자인 스타일에 대해 설명해 달라.
너무 튀거나 멋 부리지 않는 것. 책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책장을 덮으면 여운이 남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마치 영화가 끝난 다음 자막과 함께 울려 퍼지는 음악처럼. 그래서 원고를 읽고 또 읽었다. 어쩌면 내가 디자인 전공자가 아닌 것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되도록 하겠다는 오기에서 원고를 더 탐독했던 것 같다. 예전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 최고의 가치였다. 비닐 코팅으로 10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빤질빤질한 얼굴을 하고 있는 책보다 종이 질감이 느껴지면서 함께 나이를 먹어 가는 책이 좋았다. 하지만 출판사에 반품돼 있는 책들을 보면서 자중하게 된다. 지금은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컨셉트가 분명하고 개성 있는 책이 좋다. 무엇보다도 디자인이나 디자이너가 아니라 책이 살아 숨 쉬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
당신의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원고, 그 원고를 읽으면서 하게 되는 생각과 떠오르는 영상.
전체 북디자인 과정 중 당신이 가장 중요시하는 단계는 무엇인가?
작업 시작 전과 마무리. 이것을 나는 사람들에게 메뉴 정하기와 간 맞추기라고 한다. 같은 무라도 국에 들어갈 때와 깍두기가 될 때 그 모양과 성질은 달라진다. 도마에 올려놓기 전에, 썰기 전에 결정해야 한다. 썰면서, 썰어지는 모양을 보면서 심지어 주변을 보면서 뭘 만들지 정한다. 또 간 맞추기를 상대에게 넘기거나 무성의하게 해서도 안 된다. 분명하게 메뉴를 정하고 혼자 힘으로 간 맞추기를 하는 사람만이 자기 요리를 만든다고 믿는다.
편집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당신의 방식에 대해 설명해 달라.
우선 듣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리고 편집자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온 것. 이렇게 세 가지 A, B, C를 가지고 작업한다.
당신의 인생철학은? 당신의 디자인 철학은?
일이든 사람이든 부채감을 남기지 않는 것.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을 하지 않는 것. 채워 넣었다면 뺄 것!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까지.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
디자이너에게 시간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빠르다.
당신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굿판이 끝나면 굿에 참여한 사람들이 형식을 벗어나 즉흥적으로 자기가 가진 기량을 신명 나게 벌이는 판이 있다고 들었다. 출판을 통해 내가 디자인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그 판을 벌이고 싶다. 일단 판을 벌릴 공간부터 마련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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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본 내용은 한국 북디자이너 41명의 인터뷰와 북디자인 작업을 수록하였다.
출처
국내 북디자이너 1세대인 정병규, 서기흔부터 현재 활발하게 활동중인 30대 초반의 북디자이너까지 국내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북디자이너 41인의 인터뷰와 주요 북디자인 작..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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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김지선 – 지금 한국의 북디자이너 41인, 편집부, 프로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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