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928년 6월 5일 |
---|---|
사망 | 1991년 11월 14일 |
본명 | 세실 안토니오 리처드슨(Cecil Antonio Richardson) |
수상 | 1964년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과 최우수감독상(<톰 존스>) |
데뷔 | 장편극영화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Look Back in Anger, 1959) |
요약 토니 리처드슨은 린지 앤더슨, 카렐 라이스(Karel Reisz) 등과 함께 영국 뉴웨이브(British New Wave)를 이끈 삼인방 가운데 하나다. 그는 1950년대 중반에 <엄마가 허락하지 않아>(Momma Don’t Allow, 1955)라는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프리 시네마(Free Cinema)의 한 전범(典範)을 보여주었다. 그는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Look Back in Anger, 1959)를 통해서 영국 뉴웨이브의 물꼬를 텄다. 또한 그는 <톰 존스>(Tom Jones, 1963)라는 각색영화로 할리우드 주류에 대항하기도 했다.
생애와 이력
영국의 영화감독 겸 제작자. 토니 리처드슨(Tony Richardson)은 1928년 6월 5일 요크셔의 시플리(Shipley)에서 아버지 클라렌스 리처드슨(Clarence Albert Richardson)과 어머니 엘시 에반스(Elsie Evans)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애시빌 컬리지(Ashville College)를 졸업하고 옥스퍼드 와드햄 대학(Wadham College)에 입학했는데, 여기에서 훗날 함께 작업을 하게 되는 동료들인 케네스 타이넌(Kenneth Tynan), 린지 앤더슨(Lindsay Anderson), 그리고 개빈 램버트(Gavin Lambert)를 만났다. 리처드슨은 옥스퍼드대학교 연극학회(Oxford University Dramatic Society) 및 실험극 클럽(Experimental Theatre Club)이라는 두 단체의 회장으로 선출될 정도로 탁월한 예술적 재능의 소유자였다. 리처드슨은 1954년을 전후해서 텔레비전 드라마 및 TV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면서 연출역량을 키워나갔는데, 이 시기에 제작된 <벨락의 아폴로>(The Apollo of Bellac)와 <오셀로>(Othello, 1955) 등의 TV 영화는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리처드슨은 1955년 동료인 카렐 라이스(Karel Reisz)와 함께 <엄마가 허락하지 않아>(Momma Don't Allow, 1955)라는 단편 다큐멘터리를 공동으로 연출하면서 영국영화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게 된다. 당시 새롭게 활성화되고 있는 영국 재즈의 생생한 현장을 포착하고 있는 22분가량의 이 흑백 다큐멘터리는 런던의 재즈클럽에서 춤을 추는 젊은이에 관한 영화였다. 이 작품을 계기로 그는 프리 시네마(Free Cinema)의 기수(旗手)로 떠오르면서 향후 새로운 영국영화를 주도해나간다. 프리 시네마의 주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최소한의 장비만을 가지고 로케이션 촬영을 하는 것이었다. 리처드슨은 1962년 실력파 여배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Vanessa Redgrave)와 결혼하여 1967년에 이혼했고, 슬하에 두 명의 딸을 두었다. 대작 영화 <톰 존스>(Tom Jones, 1963)의 성공으로 할리우드에서도 작업을 했던 그는 1991년 11월 14일 LA에서 에이즈로 사망했다.
작품세계
토니 리처드슨은 프리 시네마(Free Cinema)의 기치(旗幟) 하에 국립영화관에서 단편 다큐멘터리들을 상영함으로써 다큐멘터리의 유행을 주도했는데, <엄마가 허락하지 않아>는 이런 맥락에서 제작된 것이다. 프리 시네마 운동의 기본 신념은 영화가 대도시 중심이 아닌 영국의 참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리처드슨과 그의 동료들은 훗날 영국 뉴웨이브(British New Wave) 계열의 감독들의 중심 주제 중 하나인 노동계급의 투쟁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뉴웨이브의 길을 닦았던 것이다. 1956년 리처드슨은 동료들과 함께 영국 스테이지 컴퍼니(English Stage Company)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이들의 목적은 무명의 젊은 작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 결실의 하나로 그는 그해 존 오스본(John Osborne)의 독창적인 희곡인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Look Back in Anger)를 무대에 올려 스타일과 주제의 측면에서 혁신을 이룸으로써 전후 영국연극사의 새장을 열게 된다. 이 작품으로 인해 당시 전후(戰後) 세대의 젊은 작가들을 지칭하는 용어인 ‘성난 젊은이(angry young man)’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게 되었다. 1957년에는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를 주인공으로 하여 다시 오스본의 희곡인 <엔터테이너>(The Entertainer)를 무대에 올린다.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과 협업을 통해, 린지 앤더슨, 카렐 라이스, 토니 리처드슨 삼인방은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영국 뉴웨이브(British New Wave)를 이끈 주도적인 인물들로 부상한다. 영국 뉴웨이브는 안일에 빠져있는 영화문화를 일소하고, 영국 계급체계와 현실 비판의식을 내면화한 새로운 영화를 주창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 서막을 연 작품이 바로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Look Back in Anger, 1959)였다. 존 오스본과 함께 우드폴 영화사(Woodfall Films)를 차리고 이미 연극으로 제작했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를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는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주인공이 번듯한 직업을 얻지 못한 채 노점상을 운영하면서 힘겨운 결혼생활을 영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당시 기성체제로 편입되지 못하고 변방으로 밀려난 젊은이들의 울분과 애환을 드러내면서 당시 관객들의 전폭적인 공감을 끌어냈다. 리처드슨은 카렐 라이스의 장편 데뷔작인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Saturday Night and Sunday Morning, 1960)의 제작을 맡으면서 뉴웨이브의 정신을 이어갔는데, 이러한 흐름은 <꿀맛>(A Taste of Honey, 1961)과 <장거리 주자의 고독>(The Loneliness of the Long Distance Runner, 1962)까지 이어지게 된다. 실라 딜래니(Shelagh Delaney)의 희곡을 각색한 <꿀맛>은 올로케이션 촬영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생생한 현장감이 살아있는 촬영 덕분에 보다 시적이고 서정적으로 노동계급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었다. 앨런 실리토에(Alan Sillitoe)의 소설을 각색한 <장거리 주자의 고독>은 다큐멘터리적인 리얼리즘과 프랑스 누벨바그(Nouvelle Vague)의 현란한 영화기법을 버무린 영화였다. 어쨌든 이 작품을 끝으로 리처드슨은 뉴웨이브에 대한 관심을 접고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토니 리처드슨의 영화경력은 <톰 존스>(Tom Jones, 1963)에 이르러 절정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헨리 필딩(Henry Fielding)의 18세기 소설을 생동감 넘치게 각색한 이 작품으로 그는 이듬해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쥐었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밖에도 이 영화는 최우수각색상과 작곡상도 수상했다. <톰 존스>를 기폭제로 할리우드의 스타급 배우들과 작업할 기회를 갖게 된 리처드슨은 쟝 주네(Jean Genet),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 같은 재능 있는 작가들과도 공동 작업한 <사랑했던 사람>(The Loved One, 1965)을 내놓았지만 인상적인 연출력을 보이지는 못했다. 영화의 스타일상으로 볼 때, 이 시기 이후 그의 작품들은 다채로움으로 요약된다. <마드모아젤>(Mademoiselle, 1966)은 프랑스 전원을 배경으로 한 느와르 풍의 영화이며, <번개여단의 임무>(The Charge of the Light Brigade, 1968)는 서사극과 애니메이션의 혼합형식이고, <어둠 속의 웃음>(Laughter in the Dark, 1969)은 사이코드라마이다.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로 작업하던 그는 1974년에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이듬해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s)를 주인공으로 한 <마호가니>(Mahogany, 1975)를 연출하는데, 영화촬영 도중 제작자와의 불화로 교체되는 불운을 겪기도 한다. 결국 이 영화는 베리 고디(Berry Gordy)의 연출로 마무리된다. 리처드슨은 1991년에 <블루 스카이>(Blue Sky)라는 영화를 만들었지만, 유작(遺作)이 되고 말았다. 1994년 그의 사후에 개봉한 이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은 제시카 랭(Jessica Lange)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사적 평가
영화평론가 김시무에 따르면, "토니 리처드슨은 민감한 정치, 사회적 이슈들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예술표현의 한 형식으로 영화가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탐구한 감독"이라고 평가한다. 프리 시네마 운동에 투신했던 순간부터 할리우드에서 마지막 영화인 <블루 스카이>를 만들기까지 그는 안전한 길을 택하는 대신 영화적 모험을 감행한 혁신적인 연출가였다. 영화 및 미디어 비평가인 산드라 코포넨(Sandra Koponen)은 토니 리처드슨이 “소설의 문체와 분위기를 번역하여 스크린에 옮기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고, 배우들로부터 훌륭한 연기를 이끌어낼 줄 아는 유능한 연출가”라고 전제하고, “유머 감각과 대사를 다루는 재주는 독창적인 느낌으로 영화를 빛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작품목록
<과학의 전당>(Parliament of Science, 영국, 1954, TV 다큐멘터리)
<개에게나 일어나야 했을 일>(It Should Happen to a Dog, 영국, 1955, TV 영화)
<드라마와의 약속: 마벨락의 아폴로>(Appointment with Drama: The Apollo of Bellac, 영국, 1955, TV 시리즈)
<미스터 케틀과 미스에스 문>(Mr. Kettle and Mrs. Moon, 영국, 1955, TV 영화)
<오셀로>(Othello, 영국, 1955, TV 영화)
<엄마가 허락하지 않아>(Momma Don’t Allow, 영국, 1955, 단편 다큐멘터리) Karel Reisz 공동연출
<갬블러>(The Gambler, 영국, 1956, TV 영화)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Look Back in Anger, 영국, 1959)
<엔터테이너>(The Entertainer, 영국, 1960)
<성소>(Sanctuary, 미국, 1961)
<꿀맛>(A Taste of Honey, 영국, 1961)
<장거리 주자의 고독>(The Loneliness of the Long Distance Runner, 영국, 1962)
<톰 존스>(Tom Jones, 영국, 1963)
<사랑했던 사람>(The Loved One, 미국, 1965)
<마드모아젤>(Mademoiselle, 영국, 1966)
<적색과 청색>(Red and Blue, 영국, 1967, 단편)
<지브롤터에서 온 선원>(The Sailor from Gibraltar, 영국, 1967)
<번개여단의 임무>(The Charge of the Light Brigade, 영국, 1968)
<어둠 속의 웃음>(Laughter in the Dark, 영국, 1969)
<햄릿>(Hamlet, 영국, 1969)
<니진스키>(Nijinsky, 영국, 1970, 미완성)
<네드 켈리>(Ned Kelly, 영국, 1970)
<미묘한 균형>(A Delicate Balance, 영국, 1973)
<맹신>(Dead Cert, 영국, 1974)
<마호가니>(Mahogany, 미국, 1975)
<조셉 앤드류>(Joseph Andrews, 영국, 1977)
<가나안의 죽음>(A Death in Canaan, 미국, 1978)
<경계>(The Border, 미국, 1982)
<뉴햄프셔 호텔>(The Hotel New Hampshire, 미국, 1984)
<처벌단계>(The Penalty Phase, 미국, 1986)
<베릴 마크햄>(Beryl Markham: A Shadow on the Sun, 영국/미국, 1988)
<여자와 남자>(Women and Men: Stories of Seduction, 미국, 1990, 공동연출)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미국/프랑스/이태리/독일, 1990)
<블루 스카이>(Blue Sky, 미국, 1991)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