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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레 생기는 길이 있다. ‘루틴’은 오랜 시간에 걸쳐 몸 밖으로 향하는 몸속 기호다. 세상에 같은 길은 없다. 루틴은 각자의 지문처럼 유일하다. 그냥 ‘버릇’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어쩐지 이 말로는 농축된 질감이 전달되지 않는다. 경기 현장에서 야구인들에게 익숙하게 들어온 ‘쿠세’ 또는 ‘루틴’이라는 단어를 쓰면 느낌이 살아서 온다.

루틴은 자신을 가다듬는 ‘몸의 기도문’이기도 하고, 상대에게 감추고 싶은 속마음을 무심결에 드러내 사냥감이 되는 위험천만한 행동이기도 하다. 한걸음 나아가면 의도적으로 약점을 드러내 상대의 오판을 유도하고 자신이 쳐놓은 함정으로 끌어들이는 노련한 트릭이 되기도 한다.

야구 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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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에게는 편한 옷을 입는 것처럼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 그 반복적인 행동은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평정심을 유도하는 육체의 기도문이다. 투수의 손끝을 떠난 공과 그 공을 향해 회전하는 타자의 방망이가 만들어내는 충돌의 방향성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라운드의 그들은 늘 충돌의 순간에 앞서 결과를 고민한다. 스트라이크가 아니면 어떻게 하지? 헛스윙을 하지는 않을까?

투구와 타격, 수비는 겉으로 보기엔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정밀하다. 투구는 20m 정도 떨어진 작은 목표를 향해 온몸의 근육과 관절이 통일체로 움직여야 하고 타격 또한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빠른 공, 또는 홈 플레이트 앞에서 급격히 궤적을 바꾸는 변화구를 향해 오차 없는 기계처럼 움직여야 한다.

그런 섬세한 무대에서 평정심은 중요하다. 마음이 흔들리면 공을 던지고 치고 잡는 시선도 따라서 흔들린다. 가지고 있는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그래서 선수들은 본격적인 행위에 앞서 심호흡을 크게 하고 방망이를 휘휘 돌리거나, 방망이나 글러브에 쓰여 있는 글자에 시선을 맞춘다. 마음을 가라앉혀 평정심을 가지려는 일종의 루틴이다. 이는 투타(投打)의 선행 작업이며 크게 보면 투타 그 자체의 한 부분이다.

루틴이 없는 선수는 없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가 한 명 있다. 삼성 라이온즈 박한이의 루틴을 살펴보면 그는 타석에서 우선 장갑을 단단하게 조이고 헬멧을 이마의 끝선에 맞춰 고쳐 쓴다. 그리고 스파이크에 흙이 엉겨 붙어 있으면 두세 번 점프해 털어낸다. 이어 방망이를 연필 삼아 홈 플레이트에 쭉 선을 그린다. 이게 끝이 아니다. 왼손으로 허벅지를 한 번 툭 쳐야 타격 준비가 끝난다. 그중에서도 헬멧 속 냄새를 맡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유난히 준비 동작이 많고 길어 ‘버퍼링 박’, ‘킁킁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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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미지1/5 박한이 선수의 루틴
박한이 선수의 루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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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이를 예로 들었지만, 모든 선수에게는 자신만의 독특한 준비 동작이 있다. 자신이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그런 루틴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집중력을 높이는 수단이다. 그라운드로 향할 때 흰 선을 밟지 않는 것처럼 많은 선수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루틴도 있다.

여러 루틴 중에 투수를 포함해서 야수들이 경기 중에 공통적으로 자주 하는, 습관과도 같은 사소한 동작이 있다. 글러브의 웹 부분을 손으로 눌러주는 동작이다. 레전드 유격수 출신인 류중일 감독에게 그 이유를 확인해봤더니, 친절하게도 선수의 글러브를 들고 와 웹 부분을 누르며 “이렇게 하는 건 볼이 들어오는 각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선수마다 손 모양이 다르고 가장 편하게 잡는 각이 다르다. 자신의 손 모양에 맞게 가장 편하게 잡을 수 있는 글러브의 각을 잡아주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루틴에 관한 재미있는 사실은 많은 선수들이 자신의 루틴에 대해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쿠세’라고 불리는 투수의 미묘한 루틴은 상대 팀에게 전력 분석의 대상이 된다.

투구 동작 직전에 보이는 글러브의 높낮이와 글러브를 오므리는 정도, 턱의 각도, 그리고 투구 동작 시에 드는 무릎의 높이 등이 파악 대상인데 구종 선택에 따라 나타나는 움직임의 미세한 차이가 있다. 직구를 던질 때는 변화구에 비해 몸에 힘이 더 들어가기에 턱이 자연스럽게 가슴 쪽으로 향하고, 글러브도 더 오므리게 된다.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해 투구 동작 역시 커지는데, 그러면 무릎도 더 높이 들게 된다. 이는 투수마다 조금씩 다르고, 노련한 투수는 오히려 쿠세를 노출시키며 반대 투구를 함으로써 상대를 더 교란시키기도 한다. 때로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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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근 집필자 소개

고려대학교를 졸업했으며, 현재 <스포츠서울> 기자이자 사회인야구단 SS파이터스 & 앵글스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상 위의 투수에서 사회인 리그의 에이스 투수⟫ , 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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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야구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저자배우근 | cp명넥서스 도서 소개

다년간 프로야구 현장을 출입한 야구 전문 기자인 저자가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넓고 얕은 지식들, 프로야구 현장의 감독과 선수들에게 직접 질문하고..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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