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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아사이언스
칼럼

여성보다 똑똑한 엄마의 과학

아이들이 아무리 귀여워보여도 막상 내가 맡아 돌보게 되면 반나절도 못가 두손두발 다 들기 마련이다. 밥 먹이는 것에서 대소변 봐주는 일까지 하나하나 필요한 아기들은 말 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어떤 아빠들은 아기 울음에 잠을 깨는 일이 잦아지면 베개를 들고 딴 방으로 건너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엄마는 늘 한결같이(물론 가끔 짜증을 내기는 한다) 아기를 돌본다. 엄마는 어떻게 끊임없는 애정으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걸까.

엄마 몸속엔 엄마 호르몬 가득

엄마 몸속엔 엄마 호르몬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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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류나 양서류, 파충류를 보면 어미가 알을 낳는다. 적게는 수십 개에서 심지어 수만 개에 이르기도 한다. 이 동물들이 자손을 많이 보는 건 알에서 깨어나 번식을 할 수 있는 성체가 될 때까지 자식들이 살아남을 확률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각 단계별로 수많은 천적이 대기하고 있다. 어미는 알을 낳을 뿐 양육 면에서는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반면 포유류는 진화하면서 번식 전략을 ‘알을 낳고 자리 뜨기’에서 ‘새끼 지키기’로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호르몬의 영향으로 뇌가 변하면서 새끼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 나오게 된다.

포유류 암컷(사람은 여성)이 임신을 하면 난소와 태반에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분비가 크게 늘어난다. 1984년 로버트 브리지스(현 터프츠수의대 교수)는 동물실험에서 임신 후반기에 두 호르몬의 분비가 많아야 나중에 모성행동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모성행동이란 어미가 새끼를 보호하고 키울 때 보이는 다양한 행동이다. 모성행동은 어미가 무의식 또는 의식적으로 새끼의 상태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해 새끼가 필요로 하는 걸 제공하는 과정이다.

또 다른 중요한 엄마호르몬은 옥시토신이다. 아기를 지긋이 응시하고 어르고 애정을 담아 쓰다듬는 행동은 엄마의 옥시토신 농도가 높아진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학술지 ‘네이처’ 2015년 4월 23일자에는 옥시토신이 좌뇌의 청각피질을 자극해 새끼가 내는 울음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든다는 동물실험(생쥐) 결과가 실렸다. 또 젖이 나오게 하는 호르몬인 프로락틴도 모성행동을 자극한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뇌에서 분비하는 몇몇 화합물도 모성행동을 유도한다는 사실이 1980년대 발견됐다. 예를 들어 우리 몸이 만들어내는 모르핀인 엔돌핀은 새끼를 낳기 직전 많이 만들어지는데 먼저 출산의 고통을 덜어주지만 모성 행동을 일으키는데도 관여한다. 엔돌핀은 뇌하수체와 시상하부에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이들 호르몬과 화합물은 뇌의 어떤 영역에 영향을 줘 모성행동을 일으키는 것일까. 미국 보스턴대 마이클 뉴먼 교수팀은 뇌하수체 앞쪽 부분인 내측시삭전야(mPOA)가 모성 행동에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영역이 손상되거나 이곳에 모르핀 같은 약물을 주사하면 생쥐가 모성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이 밖에 뇌의 정보중계기지인 시상과 정서조절에 관여하는 대상회피질도 모성행동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명한 모성 실험 하나가 벗어놓은 아이들의 옷 냄새를 맡고 자신 아이의 옷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아빠들은 자녀의 옷을 구별하지 못하지만 엄마는 대부분 자기 아이의 냄새를 식별할 수 있다. 엄마는 어떻게 이런 놀라운 후각 능력을 얻은 걸까.

캐나다 캘거리대 사무엘 바이스 교수팀은 지난 2003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생쥐가 임신을 하면 전뇌 뇌실하영역에서 신경세포가 새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신경세포는 후각구로 이동해 후각신경계를 이룬다. 연구자들은 어미가 새끼 냄새를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신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추정했다. 새로운 신경 생성은 사람 뇌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이므로 비슷한 현상이 산모에게도 일어나 나중에 자녀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억력 좋아지고 대담해져

엄마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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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과 육아는 엄마의 정서와 감각에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킨슬리 교수팀과 미국 랜돌프-메이콘대 심리학과 켈리 램버트 교수팀은 지난 1999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보자. 연구팀은 출산을 2회 이상 한 생쥐가 같은 나이 때의 처녀 생쥐에 비해 학습과 기억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실험결과를 실었다. 연구자들은 통로가 8개인 방사형 미로 가운데 한 곳에 먹이를 둔 뒤 생쥐가 먹이를 찾게 하는 실험을 했다. 출산을 경험한 쥐는 다음날부터 바로 먹이가 있는 장소를 찾은 반면 처녀 생쥐는 일주일의 시행착오 끝에 먹이가 있는 장소를 기억했다.

이런 학습과 기억 능력 향상은 뇌의 해마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 연구자들은 “임신 중 많이 분비되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해마의 수상돌기가시를 빽빽하게 만든다”며 “수상돌기가시가 많아지면 시냅스 면적이 늘어나므로 학습과 기억력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포유류 암컷이 처녀에서 어미가 되면 새끼를 키우기 위해 많은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며 “먹이와 물이 있는 장소를 기억해야 하고 새끼를 위해 이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하므로 인지능력이 향상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새끼가 생기면 행동이 과감해지기도 한다. 1.2m 높이에 만든 플러스 미로 실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 수학 기호 플러스(+) 모양의 이 미로는 한쪽은 벽이 없이 노출된 길이고 한쪽은 터널처럼 된 구조다. 처녀 쥐들은 시간 대부분을 떨어질 위험성이 있는 노출된 길보다는 터널 길 속에서 보낸다. 반면 출산 경험이 있는 쥐들은 수시로 노출된 길에 머물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어미 쥐들이 이처럼 겁이 줄어든 건 새끼를 키우려면 수시로 먹이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외출이 잦으면 그만큼 천적에게 잡힐 가능성도 커지지만 새끼를 굶기기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런 행동에는 두려움에 관여하는 편도체의 변화가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에서도 이런 현상이 보이는데 엄마들은 자녀를 지키기 위해 평소라면 피할 상황에서도 용감하게 나서곤 한다.

모유 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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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맥락에서 엄마가 되면 처녀 때와는 달리 주위를 덜 의식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모유 수유를 하는 경우다. 사람들 앞에서 젖가슴을 내놓는다는 건 처녀 때라면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되면 젖을 보채는 아이에 반응해 때론 과감한 행동을 하게 된다. 아이를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다른 모든 생각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있지만 여기에 “엄마는 똑똑하고 용감하다”는 말을 덧붙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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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 집필자 소개

서울대학교에서 화학을, 동 대학원에서 분자생물학을 공부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과학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로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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