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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아사이언스
칼럼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1kg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이 각자 저울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두 저울이 측정한 무게가 다르다. 옥신각신 싸움이 났다. 누구 저울이 맞는 걸까. 이 세상에는 이 문제를 해결해줄 물건이 있다. 바로 ‘국제킬로그램원기(IPK, 이하 국제원기)’다. 국제원기는 “짐이 곧 1kg이다”라는 선언을 시작으로 100년 넘게 질량 측정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런데 2005년, 질량의 새로운 제왕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공식적으로 제기되었다. 이후 언제쯤 새로운 제왕이 등극하는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제원기는 건재하지만 점점 왕좌에서 내려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체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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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 원기의 통치술

국제원기는 1879년 당시의 최첨단 기술로 탄생했다. 그리고 10년 뒤인 18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이 원기를 질량의 표준으로 한다”는 선포로 질량 세계의 제왕으로 등극했다.

그만큼 국제원기는 이 세상 그 어느 귀금속보다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프랑스 파리 근교의 국제도량형국 본관 건물 지하실, 폭탄이 떨어져도 전혀 손상을 입지 않을 정도로 안전한 장소에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쾌적한 환경에서 지낸다. 게다가 티끌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외부 공기가 차단된 3중 유리관 안에 고이 모셔져 있다.

하지만 국제원기는 특별한 존재가치에 비해 생김새는 아주 평범하다. 백금과 이리듐이 9대1 비율로 이루어져 있고 너비가 39.17mm인 둥근 원기둥 모양이다.

국제 kg 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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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원기는 엄격한 위계질서를 통해서 질량 측정의 세계를 다스리고 있다. 국제원기가 만들어질 당시에 40개의 동일한 원기가 함께 제작되었다. 일부 형제는 국제원기 바로 옆에서 왕을 모시고 있고 다른 형제는 다른 나라로 건너가 그 나라의 질량 세계를 다스린다. 그리고 그 형제들을 복사해서 제작된 자손들이 존재한다. 그 아래로도 복사에 복사를 거듭한 질량 표준들이 세계 곳곳의 공장과 연구실, 시장에서 쓰이고 있다.

국제원기가 지난 120년 동안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겨우 네 차례에 불과했다. 40년에 한번 꼴인데 어쩌다 한번 바깥으로 나온 원기는 국제도량형국이 정한 특별한 방식으로 목욕재계를 한다. 이때 가까이 있던 형제들도 몸을 씻는다. 그런 다음 형제 원기들이 국제원기와 질량이 얼마나 차이가 나이가 나는지를 확인한다. 이를 통해 복사본들은 자신의 질량이 얼마나 왕과 다른지 교정 받는다. 예를 들어 ‘1kg - 19μg’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교정을 받은 복사 원기들은 지위가 낮은 다른 복사본들을 다시 교정해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국제원기와 복사본 간의 질량 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07년의 외출에서는 심한 경우 100마이크로그램(μg)이나 차이가 났다. 이 정도는 설탕 결정의 반에 해당한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난 걸까. 정확히는 모른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국제원기와 복사본 간의 차이가 더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더 심각한 일은 국제원기조차 절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거다. 국제원기는 자신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원기 자체가 얼마나 변화했는지 도무지 확인할 길이 없다. 이런 상황을 두고 독일의 한 표준 과학자는 “킬로그램은 측정과학계에서 하얀 재킷에 묻어있는 얼룩과도 같다”고 말했다. 원시적인 방법으로 질량을 측정하는 국제원기는 표준과학계의 수치라는 뜻이다.

국제도량형위원회는 2005년에 미터처럼 킬로그램에 대해서도 새로운 정의를 세워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때 미터도 “이것이 바로 1m다”라고 하는 국제원기가 있었다. 하지만 반세기 전에 폐기되었다. 대신 지금은 변하지 않는 빛의 속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터는 빛이 진공에서 299,79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다. 빛이 1초에 299,792,458m를 날아가니까 이를 이용해 1m를 구할 수 있는 거다.

플랑크 상수 VS. 아보가드로 상수

그렇다면 새로운 질량의 제왕은 무엇이 될까. 미터처럼 변하지 않는 자연의 기본상수가 그 후보로, 현재는 플랑크 상수와 아보가드로 상수가 유력하다.

플랑크 상수는 양자역학의 토대를 세운 기본 상수다. 양자역학에서 가장 유명한 원리인 불확정성원리를 비롯해 여러 현상에 들어가는, 6.62606896×10-34 Js이란 아주 작은 값이다.

이를 바탕으로 질량 표준을 정하려는 쪽에는 ‘와트 저울’이 있다. 와트 저울은 전자기 힘으로 작용하는 일종의 양팔저울이라고 할 수 있다. 한쪽에는 질량을 측정하고자 하는 대상을 올려놓고 다른 한쪽에는 전자기 힘을 걸어준다. 즉 한쪽 팔에는 mg(m은 질량, g는 가속도)의 중력이, 다른 한쪽에는 전자기력이 작용하는 것이다. 두 힘이 평형을 이루었을 때 전자기력을 측정하면 질량 m을 얻을 수 있다.

와트 저울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전자기력을 조종해 저울의 양팔을 일정한 속도로 위 아래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이는 질량 m에 작용하는 기계적인 일률과 다른 한쪽 팔의 전자기적 일률이 평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이 장치의 이름이 와트 저울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때 전자기 팔에 걸린 전류와 전압, 자기장, 이동 속도 등이 얼마인지를 정밀하게 알아낸다. 그러면 여기에서 질량 m을 구할 수 있다. 와트 저울은 좀 복잡한 데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몇 개국만이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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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아보가드로 상수를 이용한 진영은 좀더 직관적이고 실용적이다. 완벽한 구를 만들어 1kg을 정의하려고 한다. 아보가드로 상수는 원자량이 12인 탄소원자가 12g 일 때의 탄소원자의 개수로 6.02214479×1023이다. 아보가드로 진영은 반도체 기술을 이용한다. 다시 말하면 탄소 대신 반도체혁명의 주역인 규소를 사용한다. 규소원자는 원자량이 28이다. 규소원자로 1kg을 정의할 경우, 아보가드로 상수에 1000을 곱하고 28로 나누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큰 수를 어떻게 셀 수 있을까? 바로 완벽한 구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아보가드로 프로젝트에서 만든 규소 구를 지구라고 한다면,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르트산도 높이가 고작 2.4m 밖에 안 된다. 이 완벽한 구로 1kg에 해당하는 규소원자의 수를 알아낼 수 있다.

구(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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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도 있다. 규소가 산화가 되면서 질량에 변화가 생긴다거나, 여러 개의 동위원소(원자의 종류는 같지만 질량이 미세하게 다른 원소)로 이루어진 규소에서 순수하게 한 종류의 동위원소로 이뤄진 규소 원자만을 얻어낼 수 있느냐 하는 거다.

질량표준 문제는 단순히 표준의 의를 바꾸는 차원이 아니라 어느 쪽이 표준의 패권을 갖느냐를 좌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표준을 정의하는 쪽은 해당 과학과 첨단 산업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kg의 새로운 표준은 논의만 계속됐지만 이제 점점 종착역에 이르고 있다. 과학자들은 2018년에 열리는 세계도량형총회에서 이 문제를 결정하려고 하고 있다. 과연 새로운 1kg은 어떻게 정의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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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용 집필자 소개

박미용은 서울대 물리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다니다가 과학동아 기자가 되었다. 전형적인 이과생이던 저자는 익숙하지 않은 글쓰기로 고생을 했다. 덕분에 10년 넘게 글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고..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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