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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을 입에 넣은 아이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아이의 얼굴에는 입 안에서 스르르 녹아내리는 그 달콤함에 순수하게 기뻐하는 표정이 떠오른다. 달콤함은 기쁨이자 활력이고 환희이자 축복이다. 이 달콤함이 우리 삶 속에 녹아든 건 언제부터였을까.
인류는 오랫동안 단맛을 찾아 헤맸다.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오직 포도당만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해 ATP를 만들 수 있기에 살기 위해서는 포도당을 얻어야 했다. 힘들게 구한 포도당은 혀끝에서 달콤하게 녹아내렸고 우리는 힘을 얻었다. 즉, 단맛에 대한 선호와 단맛을 추구하는 성향은 결국 생물학적 생존 본능과 이어진다. 사실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익숙해지는 맛도 단맛이다. 아기의 첫 먹거리인 모유에는 약 6.5% 정도의 탄수화물이 들어 있는데, 이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이 젖당이다. 갈락토오스와 포도당이 결합해 만들어진 젖당은 사람을 비롯해 동물의 젖에서만 발견되는 종류의 당으로 우유에 비해 모유에 훨씬 더 많이 들어 있다.
이렇게 아기의 첫음식은 달콤하다. 하지만 젖을 떼고 난 뒤 단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다. 젖을 떼고 처음 먹는 음식들은 대부분 쌀이나 밀과 같은 곡류인데, 이들은 그다지 달지 않다. 흥미로운 건 곡류에 다량 포함된 전분은 포도당이 길게 이어져 만들어진 다당류임에도 불구하고 전분 그 자체는 달지 않다는 것이다. 잘 익은 과일은 그나마 좀 달지만, 식물의 다른 부위는 대체적으로 쓰거나 떫고, 동물은 비릿하고 기름지다. 그러다 사람들은 우연히 꿀의 존재를 알게 된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이 짝짓기 전령사로 이용하기 위해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면서 제공한 달콤한 뇌물이 바로 꿀이다. 기록에 따르면 사람들은 약 1만년 전부터 꿀을 먹어왔고, 4000년 전에 이미 이집트인들은 양봉을 통해 안정적으로 꿀을 확보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단맛을 내는 물질을 찾았다. 북아메리카에서는 사탕단풍나무의 수액을 모아 메이플 시럽을 만들었고, 우리의 조상들은 보리를 싹 틔워 만든 엿기름으로 조청을 고았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단맛의 근원은 바로 사탕수수(sugarcane)다.
벼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인 사탕수수는 줄기가 2~6m까지 자라는데, 이 줄기 속에 자당(sucrose)이 10~20% 정도 들어 있다. 자당이란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된 이당류각주1) 로 단맛을 띤다. 그래서 사탕수수의 줄기를 잘라서 씹기만 해도 단맛이 느껴진다. 사탕수수는 연평균 기온 20℃ 이상, 강수량 1500mm 이상의 고온다습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열대성 작물로 원래 인도와 뉴기니에서 등지에 자생하는 풀이었다. 우연히 사탕수수의 줄기가 달콤하다는 사실을 안 인도인들은 단지 줄기를 잘라 질겅거리는 것보다 더욱더 진하게 달콤함을 즐기는 방법을 찾았고, BC 500년 경에는 사탕수수의 줄기에서 짜낸 즙을 졸여서 jaggery 혹은 gur라 불리는 미정제원당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냈다. 당시의 원당은 우리에게 익숙한 눈처럼 하얀 가루 형태가 아니라 갈색의 덩어리각주2) 였다. 농축된 사탕수수 액을 무거운 것으로 누르거나 말려서 물기를 제거해 굳혔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설탕의 초기 모습은 흙덩이 같았기에 설탕(sugar)과 자당(sucrose)라는 이름 자체가 자갈, 혹은 작은 덩어리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sharkara에서 유래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당 덩어리는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깨뜨려 사용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백설탕은 사탕수수 당즙에서 원심분리와 활성탄 등을 이용해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자당만을 추출한 것이다. 순수한 자당은 단일성분으로 흰색의 가루 형태를 띄는데, 이 하얀 가루 상태의 모습에서 ‘눈처럼 흰 단 것’이라는 뜻의 설당(雪糖)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고 그 것이 설탕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 단것이라고는 꿀 밖에 모르던 유럽인들의 눈에 동양의 감미료 설탕은 매우 신기한 존재였다.
기원전 325년 경, 알렉산더 대왕이 보낸 인더스강 탐험대는 인도에 존재하는 ‘꿀이 흐르는 갈대’의 존재를 알린 바 있다. 하지만 열대성 식물인 사탕수수는 유럽으로 옮겨 심을 수 없었기에, 꿀이 흐르는 갈대는 유럽으로 넘어가지 못했고 오랫동안 사탕수수와 거기서 만들어진 설탕은 인도와 남부 아시아 지역만의 토속 특산물로 남게 된다. 서양에 설탕이 다시 소개되기 까지는 천 년이 넘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당시에도 설탕은 감미료가 아니라 약으로 인식되었다. 인구의 대부분이 굶주림에 시달리던 당시 상황에서 칼로리가 높고 즉각적인 에너지원으로 작용하는 설탕은 원기를 북돋아주어 약처럼 작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설탕은 아이들의 해열제에서 노인의 강장제까지, 감기, 눈병, 결핵, 위장병에서 페스트까지 거의 모든 질병에 효험이 있다고 여겨졌다. 개중에는 설탕이 주는 약리 효과보다는 맛에 주목해 감미료로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했던 설탕은 가격이 너무 비싸 일부 귀족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설탕이 대중적인 감미료로 자리잡은 것은 식민지에 대규모 농장을 만들고 헐값에 노예를 부려 사탕수수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한 17세기 이후였다.
설탕을 가열하면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난다. 설탕을 가열하면 점차 녹아내리다가 갈색의 끈적한 물질로 변하는데, 이를 캐러멜화 반응(caramalization)이라고 한다. 캐러멜화 반응은 마이야르 반응과 더불어 식재료 가공시 나타나는 대표적인 무효소 갈변반응이다. 캐러멜화 반응은 설탕 뿐 아니라 포도당, 과당, 갈락토오스 등 당류를 융점 이상으로 가열할 때 모두 일어나는 현상인데, 이 때 열 에너지를 받은 당 성분이 화학적으로 분해되면서 향을 가진 다양한 분자들이 생겨나게 된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흰색 설탕에 단지 열을 가하는 것만으로도 설탕은 버터향, 과일향, 꽃향, 럼주향 등 다양한 냄새가 나는 휘발성 분자들을 만들어내며 달콤함과 향취가 배가된 다른 물질로 변신한다. 물론 지나치게 열을 가하면 설탕 속 탄소가 모두 탄화되어 숯덩이가 되어버리니까 주의해야 하겠지만. 갈색으로 녹은 설탕 시럽에 약간의 베이킹 파우더를 첨가하면 거품처럼 부풀어오른다. 베이킹 파우더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가스가 녹아서 끈적해진 캐러멜 사이사이에 갇히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어린 시절, 국자에 설탕을 녹여 설탕 과자를 만들 때 봤던 그 연갈색의 덩어리가 바로 캐러멜과 이산화탄소의 조화였던 것이다.
단맛에 대한 인류의 선호도는 아직도 그대로이고, 당분을 아끼고 저장하는 인체의 매커니즘 역시도 그대로인데, 이제 우리 주변에는 단 것들이 넘쳐 난다. 현대인들을 둘러싼 환경은 단맛이 주는 황홀함과 열량 과잉이 가져오는 비만과 건강에 대한 부담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디 균형 잡힌 대처방안을 찾아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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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 본 콘텐츠는 Daum 백과사전과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공동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