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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최민식 주연, 박찬욱 감독의 영화로 유명한 <올드 보이>(2003). 이유도 모른 채 납치되어 사설 감옥에서 15년을 보낸 샐러리맨 오대수의 기구한 인생을 그린 <올드 보이>는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고, <펄프 픽션>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게 극찬을 받았다. 오대수가 장도리를 들고 깡패들과 싸우는 롱 테이크 액션 장면은 해외 영화지 등에서 선정하는 ‘최고의 액션’에 반드시 들어가는 명장면이다. <올드보이>는 할리우드에서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 보이>로 리메이크되었고, 인도 등에서 불법적으로 표절한 영화도 만들어졌다. 원작인 츠치야 가론 글, 미네기시 노부아키 그림의 만화 <올드보이>는 1978년 일본에서 총 8권으로 간행되었다.
만화의 기본 설정만을 빌려온 영화 <올드 보이>
한국의 독자라면 대부분 영화를 보고 원작을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과거에 출간되기는 했지만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영화가 대성공을 거둔 후 재출간되었지만 그래도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사실 만화와 영화는 기본적인 설정과 캐릭터가 동일할 뿐, 사설 감옥에서 풀려난 이후의 사건들은 대부분 다르다. 박찬욱 감독은 원작을 영화화한다기보다, 원작의 흥미로운 설정을 가져와서 자신의 영화에서 일관되게 추구하는 원죄와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츠치야 가론 글, 미네기시 노부아키 그림의 <올드보이>는 사설 감옥에 갇힌 한 남자가 풀려나는 모습부터 시작된다. 고토가 어떤 남자였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오대수라는 이름을 ‘오늘도 대충 수습’이란 말로 푸는 것처럼, 첫 장면의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그를 보는 순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만화에서는 다르다. 어느 모로 보나 고토는 평범한 남자다. 커다란 원한도 없고, 특별하게 타인에게 원한을 질 일도 하지 않았다. 자잘한 사고를 치고 대충 수습하며 살아가는 오대수와는 전혀 다르다. 박찬욱은 사설감옥에서의 10년간의 연금, 만두 맛으로 찾아내는 중국집, 후최면의 설정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이미 영화 <올드 보이>는 너무나 유명하고 수수께끼도 대부분 알고 있으니 다 이야기해보자. 만약 영화 <올드 보이>를 아직 안 보았다면, 이 글을 읽기를 멈추고 다음에 다시 보기를 권한다. 영화 속의 오대수가 연금된 이유는 혀를 잘못 놀렸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이우진의 누나가 누군가와 정사를 하는 장면을 보고 그것을 무심코 친구에게 말한 것이다. 오대수는 그녀의 상대가 이우진이라는 것도 몰랐다. 이우진의 누나는 누군가와 정사를 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자살을 한다. 근친상간을 했던 이우진과 그의 누이는 거대한 죄의식에 침윤되어 있었다. 이우진의 극단적인 죄의식은, 누나가 자살을 한 후 근원인 오대수에게로 향한다. 죄의식이 극도의 분노와 공격으로 변해버리는 경우는 종종 있다. 영화 <올드 보이>는 다분히 기독교적인 원죄와 구원의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근친상간이나 원죄의 뿌리인 혀를 잘라버린다던가 하는 구체적인 장면들이 충격적으로 다가오긴 하지만 영화 <올드보이>는 다분히 상식적인 이야기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혀를 뽑는다는 설정조차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남자
하지만 원작은 다르다. 고토를 가둔 카키누마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복수를 시작한다. 보통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 이유는 너무나도 사소하다. 하지만 카키누마란 인간이 대체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바로 ‘그 사건’이 벌어졌던 해, 고토와 카키누마의 담임선생이었던 쿠사마는 말한다. 너희 둘은 일종의 과잉이었다고. 보통의 아이들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고토와 카키누마. 카키누마를 딱히 악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그가 어둠, 카오스, 허무의 상징인 것은 분명하다. 전학생인 카키누마는 고토를 보는 순간, 그가 자신의 반대 축에 서 있는 동류(同類)임을 안다. 카키누마가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부정적인 성향의 그 녀석은 이 나라의 파행적인 인간들이나 작가, 깡패, 살인자까지도 용서하지만 진실한 아웃사이더에게는 공포를 느꼈던 걸 거야.”
모든 문제는 거기에서 출발한다. 카키누마는 순조롭게 학교를 졸업하고, 버블 경제를 이용하여 엄청난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건 단지 돈일뿐이다. 카키누마의 본질적인 허기를 채우지 못한다. “아마 부도 지위도, 변태적인 성의 지향도 충족시킨 그는 끝내......자신의 생애에서 부끄러움 또는 상처 같은 응어리를 생각해냈겠지.” 그래서 그는 고토를 찾는다. 그리고 고토가 너무나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을 고토는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복수 같은 것이 아니다. “좀 더 뿌리 깊은 본질에 관계된 중요한 일”이다.
“가치관이 다른 놈들이 서로 피터지게 집착해서 상대를 멸망시키려는 어설픈 전쟁....이 사회는 그런 하찮은 것에서 인간들이 사는데 자극을 느끼게 할 만큼 유치의 극에 달했을 지도 몰라”라고 말하는 고토의 분석은 옳다. 만화 <올드보이>는 버블 경제가 끝나고 10년 불황으로 빠져든 일본에서, 끈질기게 세계의 의미를 파고든다. 더욱 근원적인 어떤 신화로 접근하려 하는 것이다. 이 세계의 진정한 가치는 과연 무엇인지,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말해주려 한다. 카키누마는 근원적인 고독, 어둠이었다. 타인이 보는 순간 가까이 하기를 꺼려할 만큼 근원적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카키누마는 세상의 지배자가 되기를 원한다. 표면이 아니라, 어둠 속에 존재하는 지배자가 되기를 원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위치에 선다고 해서 그의 근원적인 결핍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고토를 불러낸 것이다. 자신처럼 고독하게 10년을 보낸 후 자신의 반대편에 서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운명적인 대결을 보여주는 만화 <올드 보이>
오대수도, 고토도 어떤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연금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 오대수는 혀를 잘못 놀렸고 그래서 혀를 자른다. 일종의 미필적 고의인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 같은 것이다. 원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희생을 치르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 오대수는 혀를 자르고, 최면술사의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고토는 죄가 없다. 그는 단지 하나의 존재였을 뿐이고, 카키누마가 분노를 느낀 것뿐이다. 그건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신들의 유장한 대결처럼 느껴진다. 선악도, 진정한 승자와 패자도 없는 대결. 그러나 한없이 처절하고 반드시 의미를 깨달아야만 끝나는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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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올드보이 –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만화, 김봉석 외, 에이코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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