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마로 제작된
만화 인간에 대해 묻고 인류 너머를 보다
기생수
지구의 평범한 어느 날, 하늘에서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떨어진다. 이 생명체에 각인된 명령은 “인간의 뇌에 파고 들어가 신체를 강탈하고, 이 종을 잡아먹어라,”
흡사 환형동물이나, 촉수 괴물 같은 형상을 한 이 생명체들은 충실하게 인간의 몸에 안착했다. 한편 평범한 고교생인 주인공, 이즈미 신이치에게도 기생수는 찾아왔지만 돌발적인 변수로 뇌가 아닌 오른손에 정착했다. 한 몸으로 인간과 기생수가 공존하게 된 것이다. 지구에 위해가 될 뿐인 인간을 모조리 잡아먹어 환경은 보전해야 한다는 입장의 기생수와, 미증유의 살육사태에 직면한 전 세계의 인류는 팽팽하게 대치한다. 인간은 기생수를 색출해내는 방법을 찾고, 기생수는 더욱 사회적인 면모를 갖추며 은밀히 자신의 식인미션을 수행한다. 혼란 속에서, 인간과 기생수 양쪽 모두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변종인 신이치와 ‘오른손이’는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는 것뿐만이 아닌 인류가 함께 지향할 가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로 필요한 것일까? 만약 인간이란 존재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바뀌는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을까? 스탠리 뷰크릭 감독이 준비했던 영화를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했던
‘만물의 영장’은 인간의 오만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흔히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린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며 자신의 생존을 유지해왔다.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다른 모든 것의 희생을 요구한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행복이란, 다른 존재와 생물의 행복을 앗아가며 이루어낸 것은 아닐까. 공존보다는 지배와 희생을 강요한 것이 아닐까.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는 이런 독백으로 시작한다. “지구에 사는 누군가 생각했다. 인간의 수가 절반으로 준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남을까. 인간이 1/100로 준다면 쏟아내는 독(毒)도 1/100로 줄어들까. 누군가 생각했다.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고등학생 신이치는 이어폰을 꼽고 잠들었다가 불현듯 깨어난다. 이상한 생물이 자신의 귀로 들어가려는 기척을 알아차린 것이다. 벌레처럼 생긴 기생수는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신이치와 싸우다가 성급하게 팔을 뚫고 들어간다. 기생수의 목적은 그의 뇌를 점령하는 것이다. 그러자 신이치는 전깃줄로 팔뚝을 꽁꽁 동여맨다. 기생수가 머리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하루가 지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팔은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그의 팔이 아니었다. 오른쪽 팔은 독자적인 이성을 지닌 ‘오른쪽이’가 되었다.
기생수와 신이치는 물리적 충돌 없이, 누군가의 지배 없이 동등한 존재로서 공생하게된 것이다.
머리를 점령한 다른 기생수들은 호흡과 소화기관은 인간의 것을 사용하지만 인간의 육체를 완전히 지배하고 다른 인간을 잡아먹는다. ‘기생수’라는 제목처럼, 이 생물은 다른 존재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기생수들은 인간사회의 틈에서 점차 세력을 넓혀가지만 본능적인 한계가 있다. 모든 생물의 본능적 욕구인 종족 보존이 불가능한 것이다. 기생수인 타미야 요코는 인간을 죽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공존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떻게 기생수가 아기를 잉태할 수 있을까 등의 고민을 하게 된다.
철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선구작 『기생수』
일본에서 『기생수』가 연재될 때에는 철학적 논쟁까지 불러올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기생수』에서 기생수란 존재는 유아독존의 오만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에 대한 신의 징벌처럼 묘사되고 있다. 인간 역시 자연에 ‘기생’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강한 힘을 낭비하고 타자를 파괴하는 것이다. 많은 기생수들 역시 강한 힘으로, 인간을 지배하고 살육하려 한다. 그러나 결과는 공멸이다. 문제는 지배와 파괴가 아니라 공존과 공생인 것이다. 신이치는 어머니를 점령한 기생수에게 공격당해 위기를 맞는다. 신이치의 기생수인 ‘오른쪽이’는, 자신의 신체 일부를 신이치의 몸 안에 흘려보내 간신히 목숨을 구해낸다. 그 결과 신이치는 인간을 능가하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되고 ‘냉혹해진다’.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할 뿐, 거기에 과대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들이 흔히 내뱉는 위선적인 평화나 입에 바른 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운다. 『기생수』를 읽다보면 우리가 ‘인간적’이라 믿고 있던 것들이 어쩌면 거짓이 아닐까, 란 생각이 떠오른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실 우리가 자만하는 것처럼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인간에 대해 질문하고, 인간을 넘어서 생명과 우주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기생수>는 일찌감치 영화화 계획이 있었다. 1988년부터 1995년까지 《모닝》을 거쳐 《애프터눈》에서 연재가 끝나자마자 할리우드에서 판권을 가져갔다. 한때는 제임스 카메론이 관심 있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할리우드에서는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했고, 판권이 회수된 2013년 이후 일본에서 제작이 시작되었다. 『기생수』가 연재되던 1980, 90년대는 환경운동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전이었다. 지금은 환경보호가 중요한 사회 문제의 하나로 공인되었고, 지구 위의 인간이 지배자가 아니라 ‘여행자’라는 개념도 많이 퍼져 있다. 그런 점에서 『기생수』는 선구적인 작품이었고, 지금은 당대의 문제를 예리하게 그려내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원작을 알고 보는 영화 <기생수>
일단 영화 <기생수 파트1>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어 귓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기생수가 오른손에 정착한 후, 신이치와 오른쪽이가 나누는 대화와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들은 신기하면서도 웃기고 때로는 섬뜩하다. 어떤 모양으로든 변할 수 있는 기생수가 사람을 잡아먹거나 흉기로 변해 싸우는 모습도 그럴듯하다. 개념이나 철학에 매몰되지 않고, 기생수가 인간 속으로 들어왔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영화는 성실하게 따라간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과연 지구에 필요한 것인가. 료코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신이치는 죽기 직전에 오른쪽이의 세포를 받아 살아난 후 냉정해진다. 도덕이나 윤리에서 배운 개념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부상당한 강아지는 구해주지만, 죽은 강아지는 그저 물체일 뿐이다. 신이치는 오른쪽이와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공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연출을 맡은 야마자키 타카시는 만화 원작인 <올웨이즈 – 3번가의 석양> 시리즈를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일본경제가 한창 부흥을 시작하던 1950년대 후반이 배경인 <올웨이즈>에서는 과거의 풍경을 따뜻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성공했다.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고군분투도 정감이 잘 살아난다. 야마자키가 연출한 최근의 걸작 <도라에몽:스탠 바이 미>가 그렇듯이 야마자키는 시각 효과를 탁월하게 연출하는 동시에 관객의 마음도 적절하게 건드리는 뛰어난 감독이다. 다만 <기생수 파트2>는 1편과 달리 범작 이하에 가깝다. 원작의 심오한 문제의식과 주장을 무겁게 담아내려다가 좌초했다. 그렇다고 안 볼 수는 없고, 1편을 재미있게 보고 2편은 시작했으니 마무리는 짓자, 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보자.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기생수 –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만화, 김봉석 외, 에이코믹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