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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죽기전에 봐
야할 명작만
따뜻한 사회를 향한 상상력

그대를 사랑합니다

웹툰 작가 강풀의 대표작 중 하나. 노인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이야기로, 강풀이 스스로 범주화한 장르명으로는 ‘순정만화’에 속한다. 2012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관련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선정한 “한국명작만화 100선”에 포함되었다. 100선 가운데 일반인 대상 선호도 조사에서는 종합 4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웹툰 중 가장 높은 순위였다. 연극, 드라마, 영화 등으로도 제작되었으며 대체로 흥행 면에서 성공적이었다. 많은 장점과 함께, 한편으로는 이 노인들의 삶의 이력에서 군부독재와 같은 정치의 그늘이 은폐되어 있다는 점은 아쉬운 지점이다. 현실성을 포기하고 따뜻한 상상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 지워진 것만 같은 어두움이지만, 그 어두움이 가시화되고 직시될 때야말로 따뜻한 상상도 더 의미 있게 피어날지도 모른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 강풀

강풀의 2007년작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노년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가 직접 후기에서 밝혔듯이 강풀의 할머니를 위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나 연극, 드라마로 발표되면서도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덕에 중장년 관객에게 어필했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노년’인 주인공과 비슷한 연령대의 수용자에 방점을 찍는 것만으로는 이 작품의 가치를 폭넓게 짚어내기 어렵다. 오히려 이 속 깊은 작품은, 노년의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모두를 향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능력자’ 노인들

그대를 사랑합니다

ⓒ 강풀

이야기의 시간은 예고편에서 제시된다. 1998년 1월 1일, 주인공인 노인들이 또 한 번 나이를 먹는 시점이다. 김만석 76세, 송 씨(송이뿐) 77세, 장군봉 79세. 그들은 각각 우유를 배달하고, 파지를 수거하며, 주차 관리 일을 한다. 이미 퇴직을 하고 노동 현장에서 물러나 집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은 게 자연스러울 나이다. 하지만 ‘노동하는’ 노인들이기에 그들은 서로의 노동 현장에서 마주칠 수 있다. 마주침이 만남이 되고, 만남에서 대화가 이루어지면서 그들은 새로이 서로에게 ‘친구’와 ‘연인’이 될 수 있었다. 70대 중반에야 새로 만난 친구들 사이에 우정․ 사랑이 피어나는 과정과, 우정과 사랑으로 인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사건이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이야기를 채운다.

그런데 이 인물들은 여러 면에서 매우 비현실적이다. 이들은 서로의 감정과 반응을 면밀히 인지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마치 『무빙』이나 『타이밍』의 능력자들처럼 그들도 일종의 능력자다. 유별난 감수성, 서로의 상황과 처지에 대한 헤아림, 그리고 배려심을 지닌 능력자라 하겠다. 리어카 한쪽에 눈이 녹아있는 것만 보고도 송 씨는 김만석이 자신을 도왔다는 것을 인식한다.(2화) 치매 걸린 아내가 오랜만에 외출하고서 말문이 트인 것에 장군봉은 아내가 말이 없었던 이유가 집안에만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인지하고 미안해한다.(9화) 자신의 오토바이 소리를 알람 삼아 송 씨와 장군봉이 잠에서 깬다는 것을 알게 된 김만석은 일부러 그들의 집 앞에 오래 머물며 소리를 낸다. 그리고 그 행동의 의미를 둘은 바로 알아차린다.(10화) 이런 마음 씀씀이와 헤아림은 분명 작품 속에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 속의 노인들을 생각하면 상당히 생경하다. 달리 말해 개연성은 있지만 핍진성(verisimilitude)은 없어 보이는 것이 이들 인물이다.

비현실적이어서 의미 있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 강풀

핍진성은 가상이 현실에 유사한 정도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개연성이 주로 서사 내부의 원리에 따라 작동한다면 핍진성은 서사 안과 바깥 현실 사이에서 작동한다. 즉, 현실에서의 직접 경험 및 그를 통한 인식과 가상에서의 간접 경험의 차이가 적을수록 핍진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주인공들 같은 섬세한 노인을 우리는 본 적이 있던가? 오히려 최근 SNS에서 종종 공유되듯 대중교통에서 자리 양보 안 한다고 째려보고 호통 치는 등의 횡포가 더 익숙하지 않은가? 이런 면에서 일견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 노인들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독자에게 의미가 있는 인물들이다.

그 의미는 두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현실에서 노인에 데면데면하거나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독자에게 노인에 대한 다른 이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사실 다른 여러 범주와 마찬가지로 노인이라는 범주는 쉽게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이로 하나로 묶일 뿐, 그들 각자의 경험과 삶의 태도나 생활방식, 감수성과 정서 등은 천양지차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노인들 역시 빼어난 감수성과 배려심을 제외하면 성격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독자들은 그런 차이와 함께 공통적인 긍정적 면모를 통해 노인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갱신할 수 있다. 댓글을 보면 자신들을 배려했던 조부모를 떠올리는 경우가 가장 잦지만, 이 이해는 폭넓게 도약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물됨을 통해 느낀 따뜻함을 자신과 주변 세계에 투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타인에게 최대한의 환대를 베풀고 타인의 행동에서 적극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주인공들은, 독자에게 일종의 도덕적 가르침을 선사한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인물들을 통해 선행 자체뿐만 아니라 선행을 이끌어내는 마음가짐과 받아들이는 방식까지도 드러낸다. 독자들은 만화를 통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존경하는 데에서 시작해 배우자와 이웃, 직장 동료에게까지 이해의 시선을 확장하게 된다. 이것이 따뜻한 비현실적 인물 그리기의 힘이다.

사회는 이런 모습일 수 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 강풀

그대를 사랑합니다

ⓒ 강풀

만화가 주는 따뜻함은 나아가 사회를 그렇게 그리고 상상하게 만드는 데까지 이어진다. 송 씨는 자신을 깨워주는 김만석의 오토바이 소리가 고맙지만, 동네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한다. 하지만 강풀은 동네 사람들 모두가 고맙게 깨어나는 모습을 그린다.(10화) 층간소음으로 인해 일어난 이웃 간의 다툼이 빈번한 것이 현실이지만, 적어도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만큼은 ‘새벽부터 시끄럽게 해서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아니라 “새벽마다 깨워주는 사람”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의 세상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따뜻한 사회상은 송 씨에게 ‘송이뿐’이라는 이름을 공적으로 부여하고, 이를 통해 생활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동사무소 직원들의 모습에서도,(13화) 송이뿐에게 조금이라도 부담 없이 더 많은 수입을 안겨주려고 폐지 무게를 늘리는 고물상 부자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16화) 김만석의 오토바이 소리로 모두 깨어나는 마을이라는 이름의 사회는 심지어는 발에 채이는 돌멩이 하나로도 연결되어 있다.(21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 강풀

그러한 사회의 작은 단위로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집중하는 것은 이웃이다. 이웃이란 우정의 관계다. 장군봉은 문맹인 송이뿐에게 한글을 공부하도록 돕고, 송이뿐은 장군봉의 치매 걸린 아내의 말벗이 되어준다. 송이뿐과 김만석은 서로 우정인 듯 연애 같은 관계를 지속하며, 장군봉과 김만석도 서로 대화와 조력을 아낌없이 나눈다. 그들은 서로 “친구”다. 장군봉과 그의 아내가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었던 것도 송이뿐과 김만석이다.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을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큰 기쁨”을 나누는 이 우정의 관계는 공간적으로 근접한 노동의 현장에서 평범한 이들이 나눌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보여준다. 어쩌면 나이 먹음에 따라 가능성을 잃어가며 참으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는 이 노인들은, 아직 그만큼 나이먹지 않은 이들에게 지금부터라도 이런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며 살라고 슬며시 등 떠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기꺼이 떠밀리고픈 부드러운 손길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체온을 한 포근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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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익상 집필자 소개

국문학 전공 대학원생이자 만화평론가.<싱크SYNC>, <보고BOGO>, <크리틱M> 등에서 만화 비평 작업을 해왔다. 현재는 <주간경향>에 '만화로 보는 세상'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출처

죽기전에 봐야할 명작만화
죽기전에 봐야할 명작만화 | 저자김봉석 외 | cp명에이코믹스 전체항목 도서 소개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을 명작만화 70편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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