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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 1991년 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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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미국 |
설립자 | 마이크 모하임(Mike Morhaime), 앨런 애드햄(Allen Adham), 프랭크 피어스(Frank Pearce) |
대표자 | 마이크 모하임(Mike Morhaime, 2008~) |
분야 | 게임 및 엔터테인먼트, 온라인 게임 개발 및 유통 |
사이트 | https://www.blizzard.com/ |
본사 주소 | 캘리포니아주 어바인(Irvine, California) |
요약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미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게임 업체다. 블리자드는 1997년 프랑스의 비방디 유니버셜(Vivendi Universal)에 인수되었다가 2008년 7월 비방디 유니버셜이 비디오게임의 명가인 액티비전과 합병하면서 액티비전 블리자드(Activision Blizzard)의 자회사가 되었다. ‘워크래프트(Warcraft)’, ‘디아블로(Diablo)’, ‘스타크래프트(Starcraft)’,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등이 블리자드의 대표적인 게임이다.
블리자드의 탄생
블리자드는 1991년 2월 UCLA 동창생이었던 마이크 모하임(Mike Morhaime)·앨런 애드햄(Allen Adham)·프랭크 피어스(Frank Pearce) 등 3명이 설립했다.
애초 회사 이름은 ‘실리콘앤드시냅스(Silicon & Synapse)’였다. 자신들이 공학도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실리콘은 고분자 화합물, 시냅스는 신경 흥분이 전달되는 자리의 두 개의 신경 세포의 접합 부분을 일컫는 전문 용어다. 애드햄은 컴퓨터공학을 공부한 컴퓨터광으로 프로그래머였으며, 모하임 역시 UCLA에서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워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프로그래머였다.
이들이 회사를 창업한 계기는 당시 미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던 게임 열풍이었다. 1991년 미국 사회를 강타한 ‘닌텐도 신드롬’이 말해주듯, 당시 미국의 가정에서 게임기가 없는 집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게임기는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지금이야 글로벌 게임업체가 되었지만 창업 당시만 하더라도 블리자드는 게임 하청업체에 불과했다.
이들이 주로 했던 일은 제작된 게임을 변환시키는 게임 컨버전(game conversion)이었는데, 이 당시 블리자드는 MS 도스와 매킨토시, 세가 제니시스(Sega Genesis), 슈퍼 NES(Super NES) 등 다양한 플랫폼을 위한 게임 소프트웨어를 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일을 해도 단순 하청이라는 이유로 돈이 되지 않자 결국 외주 제작을 하면서 동시에 자체 게임을 제작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1992년 블리자드 최초의 자체 제작 게임 ‘RPM 레이싱’이 세상에 나왔다. 이듬해 내놓은 ‘록큰롤 레이싱(Rock’n Roll Racing)’과 ‘로스트 바이킹스(The Lost Vikings)’ 등이 비교적 괜찮은 반응을 얻으면서 본격적인 게임 개발에 돌입했다.
창업자들은 1994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로 회사 이름을 바꾸었는데,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창업자들은 자신들이 공학도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애초 회사 이름을 ‘실리콘앤드시냅스’로 지었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전문 용어로 된 회사 이름을 잘 이해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창업자들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 이름을 바꾸기로 했는데, 이렇게 해서 탄생한 이름이 바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였다.
블리자드는 미국에서 심한 추위와 거센 눈보라를 동반한 찬바람을 이르는 기상 용어다. 미국인들에게 블리자드는 공포의 대상이다. 블리자드가 추위, 험난함, 위험, 죽음 등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한 블리자드를 이들은 왜 회사 이름으로 선택한 것일까? 블리자드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걷어내고 보면 이들의 결정이 이해가 된다.
블리자드는 모든 것을 쓸어버릴 만큼 막강한 파괴력을 자랑하는데, 바로 그런 블리자드처럼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게임 회사가 되어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겠다는 의지를 회사 이름에 담았으니 말이다. 물론 이들의 그런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성공의 초석을 놓은 워크래프트
오늘날의 블리자드를 일군 초석은 1994년 탄생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워크래프트(Warcraft)’ 시리즈다. 워크래프트는 아제로스 대륙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오크의 대립을 다룬 게임이다. 특히 블리자드는 1995년 나온 ‘워크래프트 II: 어둠의 물결(Warcraft: Tides of Darkness)’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 게임은 블리자드에게 최초로 올해의 게임 상을 안겨 주었으며, 오리지널 워크래프트 게임인 ‘워크래프트: 오크&휴먼(Warcraft: Orcs & Humans)’로 인해 얻었던 불명예까지 털어버리도록 해주었다.
블리자드는 1994년 오리지널 워크래트 게임 ‘워크래프트: 오크&휴먼’을 출시했다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선구자와 같은 역할을 했던 ‘듄2’을 모방했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었는데, ‘워크래프트 II: 어둠의 물결 ’을 통해 그런 악평에서 벗어난 것이다. ‘워크래프트 II: 어둠의 물결’ 성공 이후 블리자드는 독자 개발과 퍼블리싱을 동시에 추진하기 시작했다.
1997년 1월 블리자드는 기존에는 혼자 하던 롤플레잉 게임의 틀을 파괴하는 혁신적인 시스템을 세상에 내놓았다. 바로 싱글 플레이와 멀티 플레이를 모두 할 수 있는 온라인 대전 서버 배틀넷(Battle.net)이었다.
블리자드가 배틀넷을 개발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인터넷은 태동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 게이머들이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게임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그건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주변에서도 비현실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럼에도 블리자드는 랜덤 시스템까지 적용할 수 있는 배틀넷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블리자드는 배틀넷을 개발하면서 온라인 게임 회사로서의 정체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블리자드는 배틀넷을 자사가 개발하는 실시간 전략 게임의 기본적인 플랫폼으로 삼았는데, 물론 이는 대성공이었다. 배틀넷을 통해 본격적으로 비상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예컨대 블리자드가 1996년 출시한 역할수행게임(Role Playing Game, RPG) ‘디아블로(Diablo)’가 세계 게이머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배틀넷 덕분이었다.
디아블로는 세계 최초로 배틀넷을 통해 서비스된 온라인 게임으로, 출시되자마자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 전 세계적으로 300만 장 이상 팔리며, 블리자드를 인기 개발사 반열에 올려놓았다.
디아블로는 스페인어로 악마로는 뜻이다. 이것이 시사하듯, 디아블로는 사용자가 전사, 마법사, 궁사 등의 캐릭터를 활용해 악마와 싸우는 스토리가 골격을 이루고 있다.
디아블로를 통해 블리자드는 전 세계로 영향력을 빠르고 확장하고 있긴 했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블리자드는 대다수 한국인에겐 아직 낯선 게임 회사였다. 이런 가운데 1998년 블리자드가 내놓은 게임 하나가 한국 사회 게임 문화에 지각변동을 불러일으켰으니, 그것이 바로 이후 ‘전략 시뮬레이션의 바이블’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Starcraft)였다.
한국을 강타한 ‘스타크래프트 신드롬’
1998년 4월 한국에 상륙한 스타크래프트는 곧바로 대학가를 점령했다. 1990년대 후반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은 지금도 스타크래프트는 ‘게임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게임’이라는 평을 내놓고 있는데, 이는 과장이 아니다.
스타크래프트 열풍은 대학가뿐만 아니라 직장에까지 번졌다. 이와 관련해 임지선은 세기말 대학가에서 “‘스타’나 한 판 하자!”라는 말보다 강력하게 친구를 끌어모으는 말은 없었을 것이라면서 “강의실에 가방만 남긴 채 PC방에 결집하던 이들은 식사 시간이면 어김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스타크래프트> 전략·전술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한다.
<스타>에 빠진 남친 때문에 고민하는 여자에겐 ‘헤어지든가 같이 하든가’ 하라는 조언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커플끼리 1:1로 <스타>를 하다가 남자가 여친 진영에 ‘핵’을 쏴서 싸웠다는 얘기에 함께 분노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직장에도 <스타> 바람은 휘몰아쳤다. 동료 간에 가르치고 배우는 아름다운 풍경이 자주 연출되곤 했다. 회식 뒤, 나이 든 상사들이 당구를 치고 싶어할 때 젊은 직원들은 PC방으로 향해 세대 간의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직장 내에서 개최되던 바둑대회, 장기대회 틈새로 <스타> 대회가 버젓이 끼어들었다. 평소 행동이 굼뜬 김 대리도 <스타>를 하는 순간만큼은 현란하게 단축키를 누르며 마우스질을 해대 새롭게 보이기도 했다.임지선, <‘스타 한 판’의 추억>, [한겨레21], 제663호(2007년 6월 7일).
스타크래프트 신드롬으로 한국엔 ‘스타크노믹스(스타크래프트 경제학)’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그런 신조어가 등장할 만도 했다. 한국의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니 말이다.
우선 전국적으로 PC방이 급증했다. 1998년 상반기 전국에 100여 개에 불과했던 PC방은 1년 뒤인 1999년 말 5,000여 곳으로 급증했으며, 2000년에는 2만 1,000여 곳을 넘었다. IMF로 인해 퇴직한 많은 사람들이 자영업에 나섰는데 이 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스타크래프트 신드롬에 기대어 PC방을 창업한 데 따른 현상이었다. PC방 창업 열기는 그간 대학생과 20․30대 젊은 층의 주요한 오락 가운데 하나였던 당구장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스타크래프트 신드롬은 곧 ‘e스포츠’의 탄생과 성공으로도 이어졌다.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두터운 팬층이 형성되면서 대기업들이 앞다퉈 스폰서로 참여해 팀을 꾸렸고 프로 선수들도 대거 탄생하기 시작했다. 게임 방송도 등장했다. 케이블 게임 채널은 물론이고 인천방송 등 일부 공중파 방송까지 스타크래프트를 소재로 한 게임 방송을 제작․송출할 정도였다. 스타크래프트가 스포츠화해 ‘프로리그’가 생겨난 곳은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유일했다. 스타크래프트는 한국에서 게임을 하나의 스포츠로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듣는 이유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스타크래프트에 빠져들었던 것일까?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가 제시된다. 첫째는 지고는 못 배기는 근성에서 비롯된 경쟁 문화, 둘째는 한국인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 셋째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 초고속 통신망 구축 등의 인프라, 넷째, 놀이를 좋아하는 한국인 특유의 기질 등이다. 어찌되었건, 스타크래프트는 사실상 한국 게임 산업 성장의 결정적 동력으로 작용해 국내 온라인게임 산업이 빠르게 몸집을 불리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스타크래프트 신드롬은 단숨에 한국이 블리자드의 관심을 받는 국가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스타크래프트를 출시하던 때만 하더라도 한국은 시장도 적고 불법복제가 만연해 있어 블리자드에겐 별다른 매력이 없는 국가였다. 그런데 그렇게 매력 없는 시장으로 분류했던 한국이 블리자드를 특별한 회사로 만들어주었으니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블리자드 측이 “블리자드에게 한국은 각별한 나라다. 이를 빗댈 수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라는 식의 말을 자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WoW로 게임업계 지존이 된 블리자드
블리자드는 2004년 말 발표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WoW)’를 통해 전 세계 MMORPG계에 또 한 번의 지각변동을 불러왔다. WOW는 기존 흥행작 ‘워크래프트’의 세계관과 역사관에 기반한 게임이다.
2007년 선보인 첫 번째 확장팩 ‘WoW: 불타는 성전(World of Warcraft: The Burning Crusade)’은 출시 첫날에만 24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역대 가장 빨리 팔린 PC 게임의 자리에 올랐으며, 2008년 11월 출시한 ‘WoW II: 리치왕의 분노(Wrath of the Lich King)’는 출시 24시간 만에 280만 장, 한 달 만에 4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2010년 12월 선보인 ‘WoW Ⅲ: 대격변(Cataclysm)’은 출시 24시간 만에 330만 장, 1개월 만에 470만 장이 팔렸다. WoW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 유럽, 러시아, 동남아시아, 호주, 뉴질랜드, 한국, 중국, 대만, 마카오, 홍콩 등에서 10개의 언어로 서비스 되었는데,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2010년경에는 가입자가 무려 전 세계적으로 1,200만 명 이상에 달했다.
블리자드가 WoW를 통해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고 글로벌 게임업계를 리드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블리자드는 WoW 하나만으로 2009년 1분기에 약 3억 1,400만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2009년 1~3분기에 세 가지 온라인 게임 시리즈로 8억 6,700여만 달러(약 1조 원)를 챙겼다.
이는 1998년 역대 최고 흥행 성적을 갈아치우면서 영화계에를 강타한 ‘타이타닉’의 수입(6억 100만 달러)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2009년 초 세계적인 게임 잡지인 영국의 [디벨로프]가 발표한 세계 게임 개발사 순위 100에서 블리자드가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이유라 할 수 있겠다.
WoW의 대성공은 엄청난 부가가치 창출로도 이어졌다. 예를 들어 블리자드가 2010년 4월 15일 WoW에서 캐릭터들이 타고 다닐 수 있도록 내놓은 아이템 ‘천공의 군마(軍馬)’는 가격이 25달러에 달했지만 단 하루 만에 14만 명이 이 아이템을 샀으며 4월 말까지 판매량은 무려 50만 개에 육박했다. 이와 관련해 김창우는 블리자드는 “실생활에서 전혀 쓸모없는 온라인 말을 팔아 1,200만 달러(150억 원) 가까운 돈을 벌어들였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보다 한 수 위다. 이 회사는 전 세계에서 1,000만 명 이상이 즐긴다는 WOW 하나만으로 연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게임업계의 지존이다. 역대 최고의 흥행기록을 갈아치운 영화 ‘아바타’의 총 수입인 18억 달러를 1년 반마다 벌어들이는 셈이다.김창우, <‘스타2’ 7월 발매 발표한 디지털 세계의 ‘봉이 김선달’ 블리자드>, [중앙선데이], 제165호(2010년 5월 8일).
‘최고가 아니면 선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세계인들은 블리자드 게임에 열광하는 것일까? 블리자드가 추구하는 게임 철학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블리자드는 게임 발매 날짜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발매하기로 한 날부터 몇 년이 지나도 발매를 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스타크래프트 후속판이나 WoW 확장판 발표도 매번 연기해 게이머들에게서 게임 출시 정책에 대한 불만을 적잖게 들어왔지만 변함이 없다.
블리자드의 이런 게임 출시 정책은 블리자드의 게임 개발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상에 재미없는 게임을 만들려고 하는 게임회사는 없겠지만 게임 완성도에 대한 블리자드의 집착은 ‘완벽주의’에 가깝다.
블리자드는 ‘최고가 아니면 선보이지 않는다’는 개발 철학을 바탕으로 게임 개발자가 만족할 만한 완성도에 도달하지 않으면 작품을 내놓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블리자드 CEO 마이크 모하임은 “내부적으론 데드라인(마감일)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데드라인을 맞추는 것보다 전율을 느낄 만한 게임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말한다.
게임 출시 정책에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게이머들도 블리자드의 ‘게임 완성도’에 대해서만큼은 인정하고 있다.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 성향을 파악해 이를 게임에 반영하는 것도 블리자드의 개발 철학 가운데 하나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바로 ‘현지화’다. 이를 위해 블리자드는 게임 개발 단계에서부터 세계 곳곳에 있는 지사의 의견을 반영해 게임에 적용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블리자드 게임은 게임 안에서 세계의 다양한 문화 양식을 많이 반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블리자드는 특히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접목에 적잖은 공을 들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자신문] 2008년 11월 11일자 기사 <크로스 오버의 달인, 블리자드>는 “원래 서양과 동양은 취향이 달라서 선호하는 게임도 역시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유독 블리자드 게임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블리자드가 오늘날 서양과 동양 모든 지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오래전부터 일본 게임의 장점에 미국의 문화를 접목하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블리자드는 일본 문화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문화를 게임에 흡수하려고 한다. 마이크 모하임은 블리자드 게임이 인기 있는 이유는 전 세계의 문화를 게임 안에 담아냈기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 부분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그들의 작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보면 그들의 진정한 노력을 알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 게임의 경우 마법이름 같은 파이어니 파이어 월, 파이어 스톰이니 하면서 외국어를 그대로 차용하였다. 하지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불덩이, 불덩이작열, 화염 폭풍 등으로 완벽한 한국어로 대체해 큰 호평을 받았다. 이러한 용어의 로컬라이징은 한국 회사도 못했던 일을 미국 회사가 해낸 것이다. 이렇듯 블리자드 게임의 미학은 자신의 취향을 고집하기 보다는 장점이 있으면 빨리 흡수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게임에 접목하려는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크로스 오버의 달인, 블리자드>, [전자신문], 2008년 11월 11일.
팬덤 브랜드가 되고 있는 블리자드
블리자드의 성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팬덤이다. 블리자드의 팬덤을 일러 블리저즈(blizzers)라고 하는데, 블리자드에 대한 이들의 충성심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블리자드는 그런 팬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대표적인 게 블리자드가 매년 회사 이름을 걸고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개최하는 게임쇼 ‘블리즈컨(blizzcon, 블리자드 컨벤션)’과 글로벌 게임쇼 ‘월드와이드인비테이셔널(WWI)’이다. 이 두 행사는 블리자드식 오프라인 커뮤니케이션의 상징으로 꼽힌다.
특히 2005년부터 시작한 블리즈컨은 블리자드가 블리저즈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 블리즈컨의 경우 입장료는 약 100달러(약 13만 원)에 달하지만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되어 매진될 정도로 해마다 성황을 이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블리즈컨에는 2만 5,000여명의 유료 관중이 2일간 행사장을 가득 채웠으며,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수백만 명이 온라인으로 블리즈컨 현장을 지켜보았다.
이와 관련해 2009년 블리즈컨 행사를 취재했던 지봉철은 “블리자드는 그들의 관계와 이야기에 관심을 둠으로써 게임에 대한 팬덤 현상을 회사로 자연스레 이끌어왔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키보드 자판을 두들기던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 이유다. 게임계에서 전례가 없는 독특한 팬덤이다. 그들은 또 블리자드 스타일을 추종한다. 과거에 구입하지 못했던 게임이나 희귀 물품들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블리즈컨은 회를 거듭할수록 ''블리저즈''들의 글로벌 팬덤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장소로 성장했다. 블리즈컨을 통해 그들을 사랑하는 팬들의 팬덤 또한 대형화, 체계화 됐다. 여기서 팬들은 스스로 블리자드와 함께 움직이고 활동한다.지봉철, <“블리즈컨”은 진화한다>, [데일리노컷뉴스], 2009년 8월 24일.
블리저즈가 블리즈컨에 열광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블리자드가 이 행사를 통해 깜짝 소식이나 신작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진행된 WWI에서는 스타크래프트2와 디아블로3의 개발 소식을 깜짝 공개했으며, 블리즈컨 2008에서는 스타크래프트2를 3개의 패키지로 발매할 것임을 발표하기도 했다.
블리자드의 CEO 모하임은 “블리즈컨이 다른 전시회와 차별점이 있다면? 또, 블리즈컨의 핵심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블리자드 게임만을 보여주고 관람객도 블리자드 게임만을 위해 모여서인지 행사 자체의 느낌과 성격이 다르다. 관람객들은 새로운 콘텐츠,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 등을 접하기 위해 블리즈컨에 참석한다. 그리고 우리는 매번 블리즈컨이 개막할 때마다 모든 참가자들에게 진정 잊지 못할 즐거운 주말을 선사하고자 노력해왔다.”
블리저즈의 이런 열성적인 충성심을 바탕으로 블리자드는 게임에서 파생된 여러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블리자드는 블리자드라는 브랜드로 시작되는 각종 상품군을 내놓고 있는데, 액션 피규어와 소설, 만화, 보드 게임, 펜 엔 페이퍼 롤플레잉 게임, 의상, 미니어처 게임 등 종류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블리즈컨의 성격도 변화하고 있다. 초기엔 블리자드 게임을 즐기는 팬들의 커뮤니티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임 전시회의 성격이 강했지만 이젠 ‘멀티 장르 엔터테인트 행사’각주1) 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버워치로 1인칭 슈팅 게임에 진출한 블리자드
블리자드는 2016년 5월 24일 새로운 게임 오버워치(Overwatch)를 출시했는데, 이 게임은 2가지 면에서 게임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하나는 블리자드가 18년 만에 선보인 새로운 시리즈라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블리자드가 그간 한 번도 출시한 적 없었던 FPS(First Person Shooting) 장르에 진출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간 블리자드는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RTS) 장르나 역할수행게임(RPG)을 주로 개발해왔다. 오버워치는 고유한 무기와 능력을 갖춘 21명의 영웅 중에서 한 명을 골라 세계 곳곳의 상징적인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6명이 팀을 이뤄 대결하는 팀 기반 슈팅 게임이다.
오버워치는 출시하자마자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약 10일 만에 700만 명이 참여해 2012년 7월 이후 200주 넘게 1위 자리를 지켜온 라이엇게임즈의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롤)’를 제치기도 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의 상승까지 이끌었다. 이와 관련해 고은이는 2016년 10월 ‘오버워치’가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를 밀어올리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 스마트폰 업체들의 생산량 확대로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버워치 열풍으로 예상치 못한 게임용 고사양 반도체 수요까지 늘면서다. 반면 오버워치의 독주로 국내 게임주들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은이, <한국 게임주 저격한 ‘오버워치’>, [한국경제], 2016년 10월 20일.
블리자드는 폭력성을 이유로 오버워치를 ‘15세 이용가’로 등급을 분류했기에 초등학생은 오버워치를 할 수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한국에서는 ‘씁쓸한’ 현상마저 나타났다. 이른바 ‘오버워치 초딩 신고하기’로, 오버워치를 하고 있는 초등학생을 신고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초딩 신고’를 한 사람들은 오버워치는 초등학생이 할 수 없는 게임이라 ‘정의구현’을 위해 신고를 했다고 강조했는데, 이 때문에 경찰서와 PC방 주인들은 적잖은 홍역을 치루기도 했다. ‘초딩 신고’에 대해 가장 곤혹스러운 입장을 보인 집단은 초등학생들이었는데, 2016년 9월 한 포털 사이트에는 ‘오버워치 단속 반대 카페’가 개설되기도 했다.
오버워치가 전 세계적으로 2000만 명 이상의 플레이어를 확보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 블리자드는 2016년 11월 5일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블리즈컨 2016’에서 오버워치의 글로벌 e스포츠 생태계인 ‘오버워치 리그’의 설립을 공식 발표했다. WoW 이후 뚜렷한 히트작을 내지 못해 블리자드의 게임 이용자수가 주춤해지고 있는 가운데 등장한 오버워치를 통해 블리자드가 다시 비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을지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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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강준만, [대중문화의 겉과 속 3](인물과사상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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