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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다른 표기 언어 Islamic State 동의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 국가, ISIL,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 ISIS, 다에시, Daesh

요약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아부 바르크 알바그다디가 이끄는 조직으로 알카에다 이라크지부에서 출발해 시리아와 이라크 일부 지역을 점령하고 '이슬람국가(Islami State, IS)'를 자처했다. 인질 살해 등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이러한 장면을 인터넷에 공개해 선전책으로 이용하고 있다. 2017년 7월 이들이 장악했던 지역인 이라크 모술을, 10월 시리아 라카를 미군과 연합군에 함락당했다. 이후 시리아 북부에서 미군과 쿠르드족 민병대를 포함한 연합군과 전면전을 벌여 2019년 3월 마지막 근거지인 시리아의 바구즈를 잃고 지역적 기반을 상실한 상태에서, 2019년 10월 26일 최고지도자인 '칼리프'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미군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31일 후계자로 아부 이브라힘 알하셰미 알쿠라이시가 지명되었다.

개요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 이전 명칭인 'ISIS(Islamic State of Iraq and al-Sham, ‘이라크-알샴 이슬람 국가)' 등으로도 불리며, 서방에서는 이들을 폄하하는 뜻으로 '다에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1999년 결성된 수니파 계열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이 전신으로, 2004년 알 카에다의 한 조직이 되었다가 2006년 이라크의 반군단체들과 합병을 거쳐 조직을 키웠으며, 알 카에다가 세력을 잃은 2013년 ISIS를 수립했고, 2014년 칼리프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주도로 이라크와 시리아의 일부에서 '이슬람국가(IS)'라는 국가를 수립했다고 선포했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추종자를 모집, 훈련하면서 테러를 자행해왔다. 미국과 연합군 및 쿠르드족 민병대의 전면적인 공격으로 2017~2019년에 걸쳐 주요 거점을 상실했으며, 2019년 10월 26일 수장인 알바그다디가 미군의 공격으로 사망하면서 와해 국면에 이르렀다.

IS의 배경 : 종파분열의 이라크, 내전 중인 시리아

2011년 12월 이라크 전쟁이 끝났다. 미군 전투병력을 이라크에서 철수시키면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이 일으킨 '테러와의 전쟁'을 조용히 끝냈다. 당초 부시 전 대통령이 전쟁의 이유로 들었던 대량살상무기는 찾지 못했지만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은 무너졌고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2011년 사살됐다. 이라크전 종전을 내걸고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은 그의 전쟁 종료 선언(2011.12.15)으로 지켜지는 듯했다.

이슬람 국가 국기

ⓒ wikipedia | Public Domain

하지만 테러는 끊이지 않았다. 오히려 알카에다보다 더 강하고, 더 잔혹한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Islamic State)가 등장했다. IS는 스스로 '국가'를 자칭하며 시리아와 이라크 일부를 차지하고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한편, 포로를 처형하는 잔혹한 영상을 중계하는 수법으로 세계 여론을 자극했다. 결국 미국의 중동개입을 강도높게 비판해온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9월 군사작전 돌입을 선언했다. 또 다시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갑자기 등장한 무장단체 IS가 어떻게 단시간에 시리아 북부 알레포에서 이라크 디얄라주에 이르는 지역을 점령하고 '국가'로 자칭할 수 있게 되었을까. 이들의 자체적인 능력 보다는 이라크 전쟁이후 중동에서 벌어진 극심한 혼란의 영향이 크다. 이라크에서는 시아파-수니파 사이의 갈등이 격렬해졌고 시리아 내전은 주변국의 대리전으로 악화되어 이들 지역은 사실상 '권력의 진공상태'에 있었다.

시아파와 수니파

이슬람교의 양대 종파로 이슬람교를 창시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누구를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갈렸다. 합의로 선출된 후계자 아부 바르크를 후계자로 지지한 이들이 수니파, 무함마드의 사촌인 알리를 후계자로 지지한 이들이 시아파다. 인구로 따지면 전세계 16억 이슬람교도의 90%가 수니파로 압도적인 다수파다. 시아파는 인구로는 10%지만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의 정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레바논의 헤즈볼라도 시아파다.

이라크에서는 인구상 수니파가 소수(20%)이고 시아파가 다수(60%)이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수니파가 권력을 독점하고 시아파를 탄압해왔다. 그러나 전쟁 이후 선거를 치르면서 다수인 시아파에게 정권이 넘어갔고, 새로 꾸려진 말리키 정부는 한동안 연합 정부의 성격을 갖는 듯했으나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수니파를 배제하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현재 IS의 지도자인 아부 바르크 알바그다디는각주1) 이러한 수니파의 불만을 적극 활용했다. 2010년 알카에다 이라크지부(AQI)의 수장이 된 그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군 장교 등 수니파 위주로 지도부를 채우고 무장세력을 재건했다.

비슷한 시기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시리아에서도 내전이 벌어졌다. 시리아는 인구의 80%가 수니파로 다수이나 소수인 시아파(알라위파)가 권력을 잡고 있다. '아랍의 봄'각주2) 에 영향을 받은 시리아 시민들이 2012년 가혹한 독재정치를 펴온 아사드 정권에 대해 평화적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에 아사드 정권이 과잉진압으로 대응하면서 사태가 악화됐고 주변국들의 개입으로 내전으로 번졌다. 수니파 보수 왕정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압박하고, 이란은 시리아에 시아파 정권이 유지되도록 경제, 군사적으로 아사드 정권을 지원한 것이다.

시리아 내전은 IS가 급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어느정도 조직 재건에 성공한 바그다디는 시리아에서 탄압받고 있는 수니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2013년 4월 시리아에서 핵심적인 반군 세력으로 활동하던 누스라 전선과 통합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알카에다 본부가 이에 반대하자 "이라크와 시리아를 구분하는 것은 제국주의 세력의 국경선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하며 알카에다로부터의 독립도 선언했다. IS는 시리아내전을 통해 상당한 군수물자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때 이라크와 시리아의 조직을 통합하겠다며 내세운 이름이 ISIS(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 혹은 ISIL(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다. 이름에서 알수 있듯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모든 무슬림을 포괄하는 이슬람 칼리프 국가'를 목표로 내걸고 있다. ISIS는 2013년 5월 누스라 전선의 본거지 도시인 라카를 점령하자마자 이 도시를 시작으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라카 점령으로 시리아 동북부의 기반을 강화한 ISIS는 6월 이라크 중부 사마라를 점령하고 이어 인구 180만 명으로 이라크에서 두번 째로 큰 도시 모술과 바이지, 티그리트도 점령하면서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이어 6월 29일 바그다디는 자신을 칼리프로 하는 '이슬람국가(IS)'의 창설을 선포했다.

풍부한 군자금, 첨단무기, 외국인

IS 점령지

회색으로 처리된 부분이 IS 점령지 (2015년 3월 현재)

ⓒ wikipedia | Public Domain

IS의 모술 공격 당시 IS군은 많아야 2000~3000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라크는 2011년 이후 416억 달러(42조원)의 국방비를 지출했으나 정부와 군의 부패로 실제 전력은 형편 없었다. 이라크 정부군 지휘관들을 포함한 많은 이라크군이 무기를 놓고 도주하거나 IS로 전향했다. IS는 풍부한 군자금과 첨단무기로 유명한데, T-55, T-72탱크와 미군 차량인 험비, 기관총, 단거리 방공포, 탄약 등 IS가 가지고 있는 첨단무기는 대부분 미군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정부군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IS는 모술을 점령하면서 중앙은행에서 8억 달러를 탈취했다. 또 이라크와 시리아 등 점령한 지역의 유전에서 나는 석유를 밀수출해 하루 10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려 왔다. 그러나 최근 반년 간 공식 국제유가가 크게 떨어지면서 수입이 급감한 것으로 보인다. 2005년 1월 IS가 일본인 2명의 몸값으로 2억 달러를 요구한 것도 이들의 재정난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IS는 7월 시리아 북쪽도 점령했다. 쿠르드자치정부가 관할하고 있던 신자르 등의 마을을 공격해 점령한데 이어 이어 이라크 최대 수력발전댐인 모술댐도 장악했다. 특히 이들은 소수종파인 야지디족을 최소 300명 이상 죽이고 여성과 아동을 납치했다. 이 사건은 중동 개입을 꺼리고 있던 미국이 공습을 결정하는 계기가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량학살을 막아야 한다'는 선언문을 냈다.

결국 미국은 이라크 지역과 시리아 지역의 IS를 상대로 각각 8월과 9월 공습을 단행했다. 이 공습의 지원을 받아 이라크 정부군과 쿠르드 자치정부군(페쉬메르가각주3) )이 8월 모술댐을 탈환했고 시리아 쿠르드민병대는 2015년 2월 시리아 북부 코바니에서 IS를 몰아냈다. 3월에는 이라크 정부군이 미군의 공습 지원 속에 티그리트 탈환을 위한 교전을 진행했다. 그러나 탈환한 지역은 IS가 점령한 전체 지역의 1%에 불과하고 핵심 지역인 시리아 라카와 이라크 모술은 여전히 IS의 수중에 있다.

IS? ISIL? ISIS?

이 수니파 이슬람극단주의 무장단체를 부르는 말은 여러가지다. 스스로는 중동을 아우르는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포하며 '이슬람국가(IS)'라고 칭하고 있지만 미국 행정부에서는 'ISIL(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 Islamic State of Iraq and Levant)', 미국 언론에서는 'ISIS(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 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라고 부른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9월 10일 대국민연설에서 "ISIL은 이슬람도 국가도 아니다. 테러리스트 조직일 뿐이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 레반트 : 시리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요르단, 레바논 등 중동의 동쪽을 포괄하는 명칭이다.
* 칼리프 : '무함마드의 대리인'이라는 뜻으로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망 이후 그의 종교적·정치적 권한을 받아 이슬람 공동체를 다스린 최고 통치자를 일컫는 말이다.

인질살해 동영상을 선전책으로

미국의 공습에 주춤한 IS가 반격의 카드로 쓴 것은 인질 살해였다. IS는 미국의 공습에 대한 보복이라며 미국 기자 제임스 폴리를 참수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2015년 1월에는 일본인 인질 고토 겐지와 유카나 하루나도 살해해 일본 사회에 충격을 안겼고, 2월에는 생포한 요르단 조종사를 불에 태워 죽이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IS는 이집트 콥트교인 20여 명, 시아파 이슬람교도 8명 등을 단체로 살해하는 영상도 올렸다.

IS가 잔혹한 인질 살해 영상을 잇달아 공개하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상대국에 공포감과 무력감을 심어주기 위한 것으로 분석되지만, 동시에 이슬람 성전주의자에 환상을 갖고 있는 전세계 젊은이들에 대한 선전책이기도 하다. IS는 SNS에 최소 4만 개의 계정을 가지고 전세계적으로 조직원을 모으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 1월 18세 청소년인 김군이 터키를 통해 IS에 입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부터 SNS나 인터넷을 통한 IS와의 접촉을 차단하는데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IS가 홍보하는 '무슬림국가'의 이미지와 IS의 현실은 크게 다르다. IS는 쿠르드족 자치정부에서 납치한 야지디족 여성들을 시리아에서 인신매매 하는가 하면, 성노예로 삼고 있다. 성노예로 전락한 여성의 상당수가 15세 이하의 어린 소녀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주민을 살해해 장기매매까지 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IS는 다수의 어린 소년들을 소년병으로 훈련시키고 있으며, 최근에는 10살 정도의 어린 소년이 인질을 살해하는 영상도 공개했다.

시리아 라카 등 IS의 근거지도 '이슬람국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워싱턴포스트나 CNN은 라카 주민의 증언을 통해 '깨끗한 물이 없고 전기가 하루에 3~4시간 정도 공급되며 거리에 쓰레기는 가득하다', '여성들은 IS전투원들과 강제 결혼당했고 시민들은 헌혈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IS에 실망하고 원래의 나라로 돌아가려는 외국인 전사들을 사살한다는 주장도 있다.

IS는 이라크내 유적을 '우상숭배'라며 파괴하고 파괴하는 모습을 영상을 통해 홍보해 국제 여론의 비난을 사고 있다. IS는 모술 박물관과 고대 아시리아 님루드 유적, 또 고대도시 하트라의 유적 등을 '우상숭배'라며 파괴했다. 님루드는 고대 아시리아의 수도로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앞둔 유서 깊은 유적지였고, 하트라는 고대 파르티아 제국의 거대한 원형 요새 도시이자 최초의 아랍왕국 수도였다. 유네스코는 IS의 잇단 유적 파괴 행위를 두고 전쟁 범죄행위로 규탄하고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조사와 조치를 요청했다.

미국 등 연합국의 공습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1월 시리아에 50명 수준의 소규모 특수부대 파병 결정을 했으나 공화당의 압박에도 대규모 지상군 투입은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2014년 10월 ‘내재된 해결(Inherent Resolve)’이라는 작전명으로 연합군을 구성했는데, 실제 공습에 동참하는 국가 외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하는 국가를 합하면 60개 국이 넘는다(2015년 2월 기준).

이라크에서는 이라크정부군과 시아파 민병대, 쿠르드자치정부 민병대 '페쉬메르가'가 IS와 지상전을 하고 있고, 미국과 호주, 벨기에,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 서방국들이 공습을 맡고 있다. 시리아 공습에는 바레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주로 중동국들이 참여하고 있으나, 실제로 95% 이상 미국이 공습을 도맡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는 2015년 9월 말부터 시리아의 IS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다.

시리아에서는 주로 쿠르드 민병대와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이 IS와 맞서고 있으나 아사드는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온 세습 독재자이자 미국 등이 퇴진을 요구해온 인물이다. 이러한 복잡한 시리아 내부 상황이 각국의 개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2015년 9월부터 IS 공습에 나섰으나, 친(親)러시아 성향인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반군에 대한 폭격을 주로 해 비난을 샀다.

연합군의 공습과 미국의 지원은 IS 전황을 교착상태로 만들었다. '페쉬메르가'로 불리는 쿠르드족 민병대는 2015년 11월 IS의 거점지역인 이라크의 산자르를 탈환하는 등 이라크와 시리아 북부에서 IS를 밀어냈다. 이로써 IS는 각종 물품, 무기, 병력의 보급로이자 석유 밀매 통로로 쓰였던 터키-시리아 국경을 봉쇄당하는 결과가 됐다.

테러

IS는 이러한 상황에 테러로 대응했다. IS는 2015년 6월 이후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등 3개 대륙을 넘나들며 공습에 동참한 터키,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에 대규모 테러를 자행했다.

IS는 2015년 6월 튀니지 휴양지 수스에서 총기난사 테러를 벌인 것을 시작으로 10월 10일 터키 앙카라역 자살폭탄 테러를 벌였다. 이후 같은 달 31일 이집트 시나이 반도 상공에서의 러시아 여객기 추락 테러, 11월 12일 43명이 숨진 레바논 베이루트 시아파 헤즈볼라 거점 연쇄 폭탄 테러, 13일 132명이 사망한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등 전방위적 테러 공격으로 이어졌다. 10월 이후 한달 새 IS의 테러로 숨진 사람은 500명이 넘는다.

IS가 세계 각국에서 테러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간 활용해온 인터넷 홍보 전략의 결과이기도 하다. IS는 2015년 11월 현재 100여개 국에 3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대원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6월 튀니지에서 총기난사 테러를 절인 테러범도 SNS 등을 통해 IS의 사주를 받은 자생적 테러리스트 '외로운 늑대'각주4) 였다. 파리 테러의 경우 '외로운 늑대'와 IS에서 파견한 조직원이 합세해 벌인 조직적 테러로 추정되고 있다.

현황

IS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극단주의에 매혹된 추종자들을 모집, 훈련한 후 유럽과 북부 아프리카 등에서 테러 활동을 벌이면서 서방에 대항하는 한편, 인신매매와 석유의 밀거래 등으로 자금을 확보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지속적인 공격이 이어졌으며, 시리아 북부에서 쿠르드족 민병대와 전면전이 시작되면서 IS는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다. 결국 2017년 7월에 IS의 중요한 거점이었던 이라크의 모술 지역을 함락당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수도라고 자처했던 시리아의 라카도 함락되었다.

2019년 3월에는 IS의 마지막 근거지였던 시리아의 바구즈도 상실하면서 IS는 사실상 지역적 기반을 잃고 와해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물리적 기반을 상실한 상태에서도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던 '칼리프'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2019년 10월 26일 시리아 북부 이들이브에서 미군의 공격에 의해 사망하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IS는 10월 31일 알바그다디의 사망을 공식 인정하고, 후계자로 아부 이브라힘 알하셰미 알쿠라이시를 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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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은하 집필자 소개

전 프레시안 기자. 프레시안에서 7년 동안 정치, 미디어, 환경 등의 분야를 취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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